[신용카드/각국 보급실태]잘쓰면 보물 아차하면 애물

  • 입력 1997년 1월 27일 20시 35분


<<소비자가 월소득이나 저축액수에 직접 제한받지 않고 용돈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신용카드는 이제 없어서는 안될 생활필수품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신용카드 회사들의 카드남발은 소비자들에 의한 카드남용을 낳고 그로 인해 사회의 신용도 추락이라는 문제가 뒤따른다. 한국도 이미 이같은 신용도 평가절하의 발병단계에 빠져든지 오래라는 진단이다. 신용카드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의 경우 전체인구보다 훨씬 많은 카드가 발급됐으며 은행금리보다 두배이상 높은 카드사용액 체납금리를 노린 카드회사들의 상혼이 비난받고 있다. 그런가하면 중국은 신용카드라기보다는 현금카드만이 조심스럽게 통용되며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카드의 발급절차가 한국보다 훨씬 까다롭다. 각국의 ▼중 국▼ [北京〓黃義鳳특파원] 중국은행에서 발행한 장성(長城)카드를 소지하고 있는 주중(駐中)한국대사관의 L모씨는 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중국에 신용사회가 도래할 날은 언제쯤일까 반문해본다. 5천달러라는 거금을 예치해놓고 카드를 발급받았으나 막상 음식점이나 백화점 등에서 이를 사용하려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한국돈 30만원 이상 정도를 카드로 지불하려면 업소측이 일일이 은행에 전화를 걸어 계좌에 잔액이 얼마나 남았는 지 확인한다. 간혹 예금잔액이 카드로 지불하려는 금액에 미달하면 여지없이 거절당한다. L씨의 경우처럼 중국은 아직 신용카드로 상징되는 신용사회의 제반여건이 무르익지 않았다. 우선 신용카드 보급이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현재 중국은행의 장성카드, 공상(工商)은행의 목단카드 등 각 은행마다 마스터 혹은 비자카드사와 제휴해서 신용카드를 발행하고 있으나 약 2천여만장에 불과한 정도다. 13억인구를 감안하면 1인당 카드소지율은 1.5% 안팎인 셈. 아직도 도시 부유층의 전유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국인의 카드사용 역시 자기예금 한도내에서만 가능하다. 외국인처럼 상당액을 예치시키지 않아도 카드발급은 가능하나 은행잔고를 초과해서 사용할 수는 없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현금카드에 가깝다. 대신 예금한도내에서만 카드사용이 가능하므로 카드발행조건은 그다지 까다롭지 않다. 재산담보나 일정액의 장기저축만 있으면 가능하다. 직장의 보증이나 증명문건, 신용도가 높은 친지의 보증이 있으면 더욱 쉽게 카드를 내준다. 중국의 신용카드는 그러나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국가차원에서 「신용카드를 적극 추진하여 현찰유통량을 줄이자」는 구호아래 골드카드프로젝트를 실시중이다. 93년부터 추진되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2003년에 전국의 4백개 도시에 약 2억장의 신용카드를 보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인민대학내에 신용카드연수코스를 설치, 5만명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등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미 국▼ [뉴욕〓李圭敏특파원] 미국에서 발급된 신용카드는 이 나라 전체 인구수보다도 많은 4억7천만장에 달한다.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인구만 따지면 한 사람이 세개 이상의 신용카드를 갖고 있다는 계산이다. 카드발급을 신청하면 은행은 우선 「애큐팩스」(Accufax) 등 개인별 금융거래 실적을 종합 관리하는 신용정보기관에 신청자의 기록을 조회한다. 그리고 그 기록에 따라 카드의 종류(플래티넘 골드 일반 등)와 월별 사용한도액을 결정, 신청자에게 카드를 발급한다. 한국과 달리 거의 대부분의 경제인구가 적어도 한군데 이상씩 주거래 은행을 갖고 개인 당좌거래를 하고 있기 때문에 금융거래실적은 신용평가에 절대적이다. 개인수표를 부도낸 적이 있거나 은행대출금을 제때 갚지 않은 기록은 신용카드 발급에 치명적 결격사유가 된다. 반면 거래실적이 좋은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은행들이 서로 카드를 발급해 주려고 경합하는 대상이 된다. 또 대학생들은 신용카드회사나 은행들의 카드발급 마케팅상 주 공격대상이다. 웬만큼 신용이 부족해도 대학생들은 장래 경제활동의 주역이 될 계층이기 때문에 미리 고객으로 확보하려는 것이 그 배경의 하나다. 그러나 은행들이 노리는 것은 이 연령층이 구매를 하는 데 자제력이 약하다는 점. 지불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연 카드 사용대금을 연체하게 되고 그러면 금리가 7%에 불과한 이 나라에서 은행들은 체납액에 대해 18%이상의 고금리를 부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을 떼여도 예금보험공사가 대신 물어주기 때문에 은행은 손해가 없다. 그런 분위기를 반영, 미국에서는 카드사용자가 대출금이나 물품대금을 갚지 못하는 규모가 매년 크게 늘고 있다. 작년 미국내 전체 은행이 카드대출금 또는 카드사용대금을 받지 못해 결손처리한 금액규모가 1백1억달러(약 8조5천6백억원)에 달한다. 또 잔뜩 빚을 지고는 연방파산법에 의한 개인파산신고를 내는 카드소지자도 점차 늘고 있어 신용카드사들은 최근 파산법을 강화해 달라고 의회에 청원하기도 했다. ▼영 국▼ [런던〓李進寧특파원] 영국만큼 은행신용카드를 발급받기가 어려운 나라도 그리 많지 않다. 첫 은행거래후 족히 6개월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이 기간중 착실히 거래실적을 쌓아야 하고 또 신용을 높여야 한다. 신용에 약간의 하자라도 있으면 1년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카드를 발급받은 경우라도 신용한도에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은행마다 약간 차이는 있지만 처음 카드를 가진 경우 월신용한도는 1천파운드(약1백40만원) 이하에 불과하다. 이후 3∼6개월 정도마다 신용을 재평가, 일정액씩 신용한도를 올린다. 예컨대 바클레이은행 비자카드의 경우 신용에 아무런 하자없이 2년정도가 경과한 중산층의 신용한도는 대략 2천6백파운드(약3백64만원) 정도. 지급청산서비스협회(APCS)에 따르면 영국 사람들이 소지한 은행신용카드의 수는 약 1천8백만개로 성인 2.5명당 1개씩이다. 상당한 제약이 있음에도 유럽 다른 나라들에 비해 3배정도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연간 거래건수는 8억건 정도로 알려지고 있으며 연간 거래액수는 카드 1개당 월 사용액수를 2백파운드씩만 잡아도 대략 7백20억파운드(약1백1조원)에 달한다. 참고로 비자카드측의 집계로 확실한 통계가 밝혀진 95년 유럽연합(EU) 12개국의 비자카드 실태를 보면 발급된 카드 수는 8천6백만개다. 연간 거래건수는 30억건이고 거래액수는 2천89억달러(약1백67조원)로 카드 1개당 월 2백달러씩 지출한 셈이 된다. 대종을 이루는 신용카드는 물론 비자카드와 마스터카드, 아멕스카드 등이다. 최근 미국의 피플스은행 등 외국의 발급기관과 영국내 신규발급기관들이 연회비 면제와 연 15% 내외의 저렴한 할부이자율, 각종 선물제공 등으로 기존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기존 발급기관들은 90년대초부터 일정액의 연회비를 받기 시작했으며 연22% 내외의 할부이자율을 받고 있다. 이들도 신규기관들에 대응, 각종 혜택 부여와 이자율 인하로 고객들을 유혹하고 있어 갈수록 신용카드시장의 규모는 커질 전망이다. ▼프랑스▼ [파리〓金尙永특파원] 프랑스의 은행들은 신용카드 발급신청을 받으면 중앙은행 컴퓨터를 통해 고객의 금융사고 경력부터 조회한다. 과거에 부도나 지급정지 등 금융사고를 낸 일이 있으면 카드를 발급해주지 않는다. 카드를 발급해도 몇가지 까다로운 제약조건이 붙어 있다. 카드발급의 전제조건인 계좌를 개설할 때 대부분의 은행이 월급명세서나 수입명세서를 요구하기 때문에 신용한도가 엄격히 책정된다. 일반인들이 보통 사용하는 은행신용카드의 월 구매한도는 1만5천프랑(2백40만원). 통장에 더 많은 돈을 예금했더라도 이 한도를 초과하면 은행으로부터 경고를 받는다. 현금인출은 일주일에 2천프랑(32만원)을 초과할 수 없다. 경고를 받고도 계속 한도액을 초과하여 사용하면 은행이 신용한도를 줄이는 조치를 취한다. 신용이 높을 경우 별도의 카드를 발급해 월 3만프랑 이상의 구매를 허용하지만 대상자는 많지 않다. 반면 직업이 없거나 학생일 경우 부모 등으로부터 매달 계좌에 돈이 입금된다는 증명이 있어야 카드를 발급한다. 이때 카드사용 한도액은 계좌를 열 때 은행과 고객이 면담을 통해 결정한다. 이 경우 구매한도액은 1만프랑 미만이 보통이다. 만 18세가 안된 미성년자의 신용카드 사용은 더욱 엄격히 제한된다. 부모가 입회한 자리에서 카드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물건을 사는 데는 사용할 수 없고 현금인출만 가능하다. 현금인출도 부모가 허락하는 한도까지만 가능하며 초과하면 자동지급기에서 돈이 나오지 않는다. 이처럼 고객에 따라 다양한 신용한도를 정확히 결정하기 위해 은행은 새로운 계좌를 개설할 때 반드시 해당고객과 면담절차를 거친다. 면담을 통해 신용한도가 정해지면 계좌에 돈이 없더라도 한도만큼은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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