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슬비는 대개 존재감이 약하다. 우산을 펼지 말지 망설이게 만들고, 옷깃만 슬쩍 적신 채 사라진다. 시인은 그 미미함을 놓치지 않는다. 크지 않아서 더 잘 보이는 ‘가늘고 성긴’ 빗줄기, 그칠 듯하다가도 끝내 멈추지 않는 고집을 정확히 붙잡는다. ‘많이 쏟진 못해도, 끝내 그치려 않는’ 애매한 상태에서 보슬비는 오히려 또렷한 장면을 연출한다. 방울방울 가느다랗게 이어져 주렴 같은 막을 만들고, 그 막이 먼 산자락을 가린다. 한데 시인은 산을 좋아하는 자신을 ‘시샘’하는 그 주렴에 투정하지 않는다. 성긴 주렴 너머로 보이는 산이 오히려 더 그윽하다. 선명함이 줄어든 자리에 운치가 들어오고, 직선적인 시야 대신 여백이 생긴다. 보슬비가 만든 주렴은 산을 가리지만, 시선까지 닫지는 못한다. 가림이 곧 상실은 아니라는 것, 이 시가 슬쩍 건네는 ‘다시 보기’의 힌트다.
이 시는 인생에서 크기보다는 섬세함이 더 소중하다는 걸 일깨운다. 큰 비극이나 큰 환희가 없어도 주렴 같은 보슬비와 그 너머의 산빛만으로 세상은 충분히 생기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것. 시인은 자연에 감정을 얹어 짐짓 익살을 부려 보이지만, 그 익살의 밑바닥에는 관찰의 폭을 넓혀 자연과 교감하는 여유가 담겨 있다. 주렴 너머의 산빛처럼, 인생도 가끔은 ‘흐림’ 덕에 외려 선명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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