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1년 12월 2일 18시 49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그러나 이 야심한 시각 여의도 한켠에서는 30여명이 분주히 또다른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이들은 MBC의 야심작 ‘!느낌표’(토 밤 9·50)의 한 코너인 ‘신동엽의 하자 하자’의 제작진.
‘전국의 모든 고등 학생이 아침밥을 먹고 오는 그날까지!’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이 코너는 매주 한 교실을 찾아가 아침 식사를 마련해주고 학생들의 고단한 현실을 전달한다. 취지는 등교 시간이 너무 빨라 청소년들이 아침밥을 거를 수 밖에 없는 교육 현실의 불합리한 면을 둘러보자는 것이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달 30일 이들의 ‘비정상적인’ 일과를 좇았다.
#1. 30일 오전 2시 의정부 호원고등학교 운동장
2학년 8반 담임 이봉아 교사(28)가 스태프를 맞이했다. 이 교사의 앳된 얼굴에 사람들은 잠시 놀라는가 싶더니 이내 농담을 던진다.
“선생은 안 계시고 학생이 나와 있잖아.” “이 시간에? 혹시 비행청소년 아니야?”
“OK, 그 말 살립시다!”
야외녹화는 진행자의 애드리브만큼이나 PD의 순발력이 극적 재미를 더하는 요인. ‘!느낌표’의 김영희 프로듀서는 운동장에서 신동엽과 이 교사가 만나는 장면에서 나온 그 말을 그대로 활용하기로 한다.
#2. 30일 오전 3시 주방
신라호텔 한식당의 백영란 요리사가 합류했다. 오늘의 아침메뉴는 갈비찜. 조리대에는 갈비 세 소쿠리와 20Kg짜리 쌀 한 푸대, 된장국에 넣을 아욱 등이 놓여져 있었다.
“잘하면 오늘은 아침밥 먹고 가겠는데?”
스태프들은 촬영이 끝나면 차가 밀리기 전에 가야 하기 때문에 한번도 현장에서 아침밥을 먹은 적이 없단다.
촬영이 진행되면서 카메라에 익숙해진 이 교사는 연출도 하지 않은 애드리브를 연이어 날린다. ‘큐’ 사인이 떨어지자 이 교사는 “이게 다 우리 ‘아들’들이 먹을 거라니 아주 흐뭇∼합니다”라며 능청을 떤다. 카메라 뒤쪽에 서있던 노도철 PD가 던지는 한 마디.
“완전 방송체질이시네.”

#3. 30일 오전 5시 교실과 비품창고
30여명의 스태프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테이블 세팅 작업에 나섰다. 교실에서 찍는 첫 장면은 신동엽의 시식. 신동엽이 밥 한공기를 순식간에 비우고 그릇을 뒤집어 머리 위로 털어보이자 노PD는 크게 웃다가 이내 씁쓸한 표정이 된다. “에이∼, 배고파 미치겠다.”
쉴틈도 없이 모든 불필요한 장비를 교실 옆 교무실로 옮기고 스태프들은 ‘깜짝쇼’를 위해 ‘꼭꼭’ 숨는다. 한 학생이라도 눈치 챌 경우에는 삽시간에 소문이 퍼져 ‘깜짝쇼’는 물거품이 되기 때문. 복도에 설치해놓은 몰래카메라 모니터 앞에 전 스태프가 숨죽여 학생들을 기다린다.
“야! 왔어 왔어.”
“어디 어디?(잠깐 긴장) 아이 참, 교장선생님이 거기서 어슬렁대시면 어떡하나. 야, 빨리 모시고 들어와!”
#4. 30일 오전 7시 교실
하나둘씩 등교한 8반 학생들은 ‘식당’으로 바뀐 교실에 좀처럼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급기야 이들은 교실밖에서 웅성대던 끝에 10명 가까이 모이자 단체로 교실로 들어왔다. 대기 중이던 촬영팀이 모습을 드러냈고 옆반 여학생들은 “꺄악, 신동엽이야!”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먹성좋은 학생들이 꾹꾹 눌러담아달라고 아우성을 치자 교실은 시장통이 됐다. 식사가 끝나고 흥분된 분위기가 가라앉을 무렵, 학생들은 자기 얘기들을 하나씩 털어놓았다.
그때 갑자기 교실 한 쪽에서 들려오는 훌쩍대는 소리. 승기가 얼마전 아버지 생신을 못챙겨드렸다며 울고 있었다. 뒷자리의 종석이도 “부산에 계신 아버지가 보고 싶다”며 눈물을 보이자 어느새 그 주변은 훌쩍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이 때 나직이 들려오는 제작진들의 말소리.
“아이들이 역시 착하고 순수해. 그치?”
30여명의 스태프가 무엇엔가 홀린 듯 이어진 촬영은 오전 9시경 끝났다. 밤샘으로 지친 스태프들은 쓰러지듯 주저앉아 아침을 먹으려 했다. 그러나 몰려드는 피로 때문에 갈비찜의 맛을 느끼기 힘든지 그들은 몇 술 뜨는가 싶더니 하나둘 현장을 떠났다.
<김수경기자>sk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