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떴다 전원주』…연기생활 35년만에 CF서 첫주연

  • 입력 1998년 3월 17일 20시 02분


탤런트 전원주(59). 늦깎이도 그만한 늦깎이는 드물다. 연기생활 35년 만에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다.

그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것은 드라마가 아니라 TV광고에서다. 요즘 데이콤 002의 TV광고를 본 사람이라면 60년대쯤의 배경에 만화영화 ‘짱가’의 주제곡을 깔고 지붕위를 마구 뛰어가는, 촌티나는 전원주를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었을게다.

이 복고풍 유머광고는 젊고 미끈한 정상급 탤런트들이 장악한 다른 광고들을 제치고 순식간에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더구나 001 광고모델 최진실의 맞상대다. TV의 온갖 오락 프로에서는 서로 그를 모셔가기 위해 줄을 섰다.

전원주가 광고모델로 나온 것은 20여년 전 ‘모기잡는 에프킬라’ 광고에 슬쩍 얼굴을 비친 뒤 이번이 처음.

“고추장이나 세제 광고 한 번 해볼테냐고 가끔씩 전화가 왔었지만 그것도 사진을 보내면 다음부터 연락이 없어요. 더군다나 이번에는 품위있는 전화 광고라고 하기에 ‘품위까지 있다는데 설마 나한테 오랴’ 싶었는데….”

63년 동아방송 성우1기생, 67년 TBC의 ‘청춘극장’으로 데뷔한 이래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번듯한 배역을 맡아본 적이 없다. 늘 수다스러운 아줌마에 현대극이면 가정부, 사극이면 주모가 고정 배역이었다. 남자를 상대하는 역을 맡아도 춤바람이 나서 제비한테 돈을 뜯기거나 돈으로 남자를 사는 졸부마누라 역할이었다.

조연으로 맴돌면서 설움도 겪을만큼 겪었다.

“만날 앞치마를 두르고 가정부 역할만 하니까 분장실이 더러우면 전부 ‘왜 이렇게 더럽지’하면서 날 쳐다봐요. 오죽하면 애들이 엄마 때문에 창피하다고 학교에 오지말라고 했겠어요.”

당장 먹고 사는 일이 급해 출연은 했지만 참 기가 막혔다. 94년 어느날 KBS의 토크쇼 ‘밤과 음악사이’에서 나오라고 하기에 마음 속에 맺힌 설움을 몽땅 다 털어놨다. 서러운 이야기를 해도 익살맞은 그의 ‘재주’가 먹혀들어 내리 두 주를 출연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 뒤부터 토크쇼 코미디 등 오락 프로에서 섭외가 들어오면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비로소 뜨기 시작했다.

밑바닥 인생을 주로 연기해왔지만 그는 모두들 어려웠던 시절 대학(숙명여대 국문과)을 나온 작가지망생이었다.

“남들이 날 만나면 세 번 놀란다고 해요. 우선 꼭 초등학교 중퇴한 사람처럼 생겼는데 대학까지 나왔냐는 거고, 둘째는 그 짧은 다리로 운전을 다 하냐, 셋째는 남편이 나랑 닮지 않고 잘 생겼다고 놀라더라고요.”

1m50의 작은 키 때문에 한 코미디 프로에서는 ‘전원주가 차를 몰고 가면 경찰이 빈 차인 줄 알고 세워서 들여다본다더라’는 개그까지 유행했었다.

“하도 약이 올라서 언젠가는 거울가게 앞에서 차를 세워놓고 창 밖으로 얼굴이 안보이는지 확인해 봤다니까요. 잘만 보이두만….”

손자를 둘이나 둔 할머니이지만 그는 나이나 체면에 신경쓰지 않고 솔직담백하다. 뒤늦게 코믹 연기로 빛을 발하고 있어도 그에게는 아직도 버릴 수 없는 ‘배우’의 꿈이 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진지한 드라마 한 번 해봤으면 좋겠어요. 누가 ‘대표작이 뭐냐’고 물어볼 때 말문이 막히는 것이 스스로 창피해요. 그리고 기회가 닿는다면 괴롭고 힘들었던 연예인 생활을 정리하는 자서전도 한 번 써보고 싶고요.”

〈김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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