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접속」,PC통신서 만난 도시남녀의 사랑과 고독

  • 입력 1997년 8월 29일 08시 15분


사랑하는 사람에겐 노래가 보인다. 영화 「접속」의 두 남녀가 그랬다. 단조로우면서도 속삭이는 듯한 멜로디의 올드팝 「엷은 푸른 눈동자(Pale Blue Eyes)」. 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이 곡은 라디오PD인 동현(한석규 분)의 옛 애인이 좋아했던 노래다. 라디오에서 이 음악을 듣고 푹 빠진 수현(전도연)이 PC통신으로 노래를 신청한다. 동현은 혹시 「그녀」인가 싶어 컴퓨터로 대화를 시도한다. 두사람의 길고 긴 인연의 시작이다. 『삶은 때로 먼 길을 원합니다』 영화는 이런 내레이션(사실은 라디오 DJ의 멘트)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보통 멜로드라마와는 다르다. 두 사람은 PC통신으로 서로의 아픔을 나눌 뿐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다. 신기하게도 두사람의 삶이 따로 떨어져 흘러가는데도 관객들은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점점 두사람의 아픔에 깊이 빨려들어간다. 짝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여자, 그리고 과거의 여인이 갑자기 사라진 후 그녀만을 그리는 고독한 남자. 장윤현감독(30)이 신인이라기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절제된 영상을 구사한다. 끊임없이 장면 전환을 하고 카메라의 각도를 바꾸지만 현란하지 않은 촬영. 섬세하면서도 촉촉한 전도연의 배역과 연기. 등을 지고 돌아선 모습이 멋있는 한석규. 「넘버3」의 깡패 한석규는 몇년전 MBC 드라마 「호텔」의 그 모습으로 돌아왔다. 희뿌옇게 동이 틀 때까지 사랑하는 사람의 아파트 앞을 지키다 돌아서는 쓸쓸한 모습. 여성팬들을 「까무러치게 했던」 그 남자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영화의 압권은 역시 마지막이다. 남자는 옛 애인의 죽음을 확인하고 삶의 의욕을 잃은 채 이민을 가려한다. 여자는 만나기로 했던 피카디리극장 앞에서 날마다 그를 기다리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남자는 극장 앞을 찾아가지만 말을 붙이지 못하고 망설이며 2층 카페에서 오래오래 여자를 지켜보기만 하는데…. 드디어 마주친 두사람. 안구건조증에 고통받던 전도연의 눈이 촉촉이 젖기 시작하고, 관객도 눈물을 참기 어려워진다. 그리고 서울…. 우디 앨런의 뉴욕처럼, 왕가위의 홍콩처럼 영화는 우리들의 서울을 보여준다. 도시의 고독을 비추는 한강의 불빛과 2층 카페에서 내려다보던 피카디리극장앞 광장…. 아, 참 오랜만에 가슴 찡한 사랑이야기…. 내달 13일 개봉. 〈신연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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