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과 1억差”… 규제가 낳은 ‘다중 매매가’

정순구 기자 , 이새샘 기자 입력 2021-08-06 03:00수정 2021-08-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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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거주 강화-임대차법 규제에
같은 단지, 층수 비슷한데도 실입주 가능한 집 가장 비싸
전월세 끼면 수천만원 떨어져 3중-4중가격 형성… 시장 혼란

직장인 허모 씨(35)는 최근 서울 노원구의 전용 45m²짜리 아파트를 사려고 중개업소에 갔다가 매물 가격이 천차만별인 걸 보고 당황했다. 같은 단지, 동일 면적, 비슷한 층인데도 싼 매물은 7억2000만 원, 비싼 매물은 7억8000만 원의 호가를 보였다. 국토교통부의 최근 실거래가(6억8700만 원)나 KB국민은행 부동산시세(6억6000만 원) 수준의 매물은 씨가 말랐다. 중개업소 관계자는 “저렴한 매물은 보증금부 월세 계약이 1년 이상 남아 있는 반면 비싼 매물은 세입자가 없어 바로 입주할 수 있다는 게 큰 차이”라고 전했다.

최근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서 주거 여건이 거의 같은 아파트라도 세입자 유무와 임대차 계약 조건에 따라 매매가가 크게 달라지는 ‘다중 가격(multiple price)’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7월 도입된 임대차 3법 여파로 전세시장에 퍼진 이중 가격 문제가 매매시장으로 확산된 셈이다.

5일 수도권 일선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실입주가 가능한 매물은 호가가 높게 형성되는 반면 전세나 월세를 낀 매물은 호가가 떨어지면서 매수자로서는 시세 수준을 알기 힘들어졌다. 정부가 다주택자를 겨냥해 규제책을 쏟아내자 주택시장이 직접 입주하려는 사람 중심으로 재편됐고 그 결과 즉시 입주할 수 있는 아파트 매물의 가치가 종전보다 더 높아진 것이다. 실수요 중심 시장이 된 것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임대차 3법 도입으로 매수자들이 기존의 전세 계약, 즉 갱신 계약을 낀 매물을 기피하면서 가격 편차 문제가 생겼다. 최근 신규 계약된 전세 가격이 급등하면서 전세를 낀 매물 간에도 가격 차가 벌어졌다. 그 결과 세입자 없는 매물, 신규 전세 계약을 낀 매물, 갱신 계약을 낀 매물, 월세를 낀 매물 등의 순서로 서열이 생긴 셈이다.

일례로 서울 송파구의 한 단지(전용면적 49m²)는 1000채 이상 대규모 단지지만 매물은 손에 꼽을 정도다. 즉시 입주할 수 있는 매물은 호가가 10억5000만 원에 이른다. 최근 실거래가(8억8000만 원)보다 2억 원 가까이 비싸다. 반면 보증금 3억 원의 전세 계약이 1년 남은 매물의 호가는 10억 원, 보증금 3000만 원에 월 임대료 80만 원의 월세가 낀 매물의 호가는 9억 원이다. 현지 중개업소 관계자는 “매물이 거의 없어 당장 입주 가능한 매물은 ‘귀한 물건’ 대접을 받으며 다른 물건보다 호가가 수천만 원씩 높다”며 “호가가 높은 일부 매물이 계약되면 실거래가가 높아지고 그 결과 시세가 오르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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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평수 같은 집, 즉시 입주 가능땐 6억-전세 끼면 4억8000만원


서울에 사는 직장인 이모 씨(38)는 최근 은평구의 한 아파트 매매가 수준을 알아보려고 인터넷 사이트를 샅샅이 뒤졌지만 시세가 얼마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집주인이 살고 있어 바로 입주 가능한 매물은 6억 원, 기존 세입자가 기간을 연장한 ‘갱신 계약’ 전세를 낀 매물은 4억8000만 원, 새로 세입자를 받은 ‘신규 계약’ 전세를 낀 매물은 5억5000만 원이었다. 모두 같은 평형에 비슷한 층수였지만 입주 시기와 전세 계약 형태에 따라 가격이 최대 1억2000만 원까지 벌어졌다.

과거에도 세입자 유무에 따라 집값에 차이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임대차3법 여파로 전세 조건과 방식에 따라 전세금 격차가 커진 데다 각종 규제들이 겹치면서 매매가 격차가 종전보다 더 크게 벌어지고 있다.

이런 ‘다중(多重) 가격’이 확산되면 집을 사려는 사람이 적정 가격 수준을 알기 어려울 뿐 아니라 선호도가 높은 입주 가능 아파트값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집값 불안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임대차3법 등 겹겹 규제에 ‘다중 가격’ 확산

한 단지, 같은 면적 아파트 가격이 여럿인 다중 가격 현상은 정부가 지난해 6·17부동산대책에서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본격화했다. 투기과열지구 내에서 3억 원 이상 주택을 매입하면 전세대출을 바로 회수하는 방안을 도입하면서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가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면 6개월 내에 해당 주택에 전입해야 한다는 규제까지 도입되며 세입자가 없어 입주 가능한 매물의 인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여기에 임대차3법으로 전세시장에 이중 가격이 나타나고 전세의 월세화 양상이 확산되면서 매매가에는 여러 층이 생겼다. 입주 가능한 매물과 전세를 낀 매물, 두 가지 중심의 시세가 최근에는 전세계약의 형태와 보증금 조건에 따라 삼중(三重) 사중(四重)의 매매호가가 형성된 것이다.

지난달부터 양도세 중과가 시행되며 매물이 잠기면서 다중 가격 현상은 더 심해졌다. 비슷한 조건의 매물이 많다면 세입자가 집주인과 협의해 가격을 낮출 여지가 있지만 매물이 없다 보니 입주 가능한 매물을 가진 집주인이 거래의 주도권을 쥐게 된 것이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시장은 이미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된 상태로, 입주 가능 매물이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며 “전세가도 올랐지만 매매가가 더 크게 오르면서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것보다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입주 가능한 집을 사려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 “시세 못 믿겠다” 적정가 판단 기준 모호해져
지난달 최모 씨(40)는 서울 노원구 아파트를 해당 단지 기준 역대 최고가에 매수했다. 바로 입주가 가능한 매물이어서 전세를 낀 매물보다 3000만 원 더 비쌌지만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면 매수할 수 있었다. 그는 “바로 입주 가능한 매물이 단지에 딱 하나여서 다른 매물보다 왜 더 비싸냐고 따지거나 가격을 낮춰 달라고 할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다중 가격이 최근 아파트 매매가 상승세에 영향을 주는 측면도 있다. 입주 가능 매물이 전체 단지의 가격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8월 첫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전주 대비 0.2% 오르며 12·16대책이 나왔던 2019년 12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는 0.37% 올라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12년 5월 이후 9년 2개월 만에 역대 최고치를 나타냈다.

다중 가격 현상이 부동산 관련 통계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부동산 통계는 한국부동산원과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 모두 표본을 추출해 시세를 산정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다중 가격처럼 한 단지에 여러 시세가 혼재해 있다면 특정 표본이 해당 단지를 대표한다고 보기 힘들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매수자와 매도자의 조건에 따라 여러 가격이 형성돼 표본 추출 방식으로는 통계의 부정확성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지나치게 많은 규제를 도입해 시장을 복잡하게 만든 결과”라고 지적했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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