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총수 31년간 시총 396배로… 세계 1위 제품 0개→13개 키워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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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회장 타계]회장 취임후 기업규모 급성장

삼성전자 서초사옥
삼성전자 서초사옥
‘경영자 이건희’의 성과는 숫자가 보여준다.

1987년 고인이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할 때 그룹의 시가총액은 1조 원 정도였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그룹 총수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바꾼 2018년 삼성그룹의 시가총액은 396조 원으로 늘었다. 31년 만에 기업 가치가 약 400배로 증가한 것이다.

무엇이 바뀌었기에 기업의 가치가 이렇게 비약적으로 커졌을까. 그 단초는 세계 1등 제품의 숫자로 알 수 있다.

1987년의 삼성은 세계 시장에서 1등 하는 제품이 하나도 없었다. 2020년 현재 이 숫자는 13개다. D램, 낸드플래시, 대용량 저장장치인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휴대전화, 스마트폰, 평판TV, 사운드바, 사이니지, 냉장고, 반도체용 기판,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에너지저장장치(ESS), 전동공구용 배터리가 이들이다.

1등은 저절로 된 게 아니었다. 이 회장은 1993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양판점 베스트바이에서 먼지가 쌓인 채 처박혀 있던 삼성 TV를 목격했다. 그는 사장단을 불러 직접 보게 했다. “자기가 만든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직접 확인하라. 어디에 놓여 있고, 먼지는 몇 mm나 쌓여 있고, 얼마에 팔리는지 보라”고 했다.

당시 삼성의 TV사업부는 국내에서도 1위가 아니었다. 세계 1위이던 반도체 사업부에서 150여 명의 연구개발 인력을 이식하는 등 전사적 지원이 시작됐다. 2006년 삼성 TV는 판매 대수에서 세계 1위가 됐고, 이듬해엔 매출로도 1등에 올랐다.

이런 이 회장의 리더십과 혜안은 반도체가, 스마트폰이, 휴대전화가 세계 1위로 올라설 때마다 빛을 발했다.

그렇다고 이 회장이 추진한 모든 사업이 성공했던 건 아니다. 대표적인 게 자동차 사업이다. 1995년 삼성자동차를 설립해 1998년 첫 작품인 SM5를 선보였지만 외환위기를 맞아 비틀대다 2000년 프랑스 르노사에 지분을 대부분 팔았다. 하지만 이 회장은 위기에 강했다. 외환위기 때는 ‘파격적이고 성역 없는 구조조정’을 내세우며 50개였던 계열사를 40개로 줄여 위기를 돌파했다. 2008년 ‘삼성 특검’으로 경영 일선에서 잠시 물러나기도 했지만 2010년 복귀 이후 다시 한 번 삼성에 ‘위기론’을 불어넣으며 갤럭시S 시리즈 같은 공전의 히트작을 만들어냈다.

이 회장 취임 초 그룹의 매출은 9조9000억 원이었으나 2018년엔 386조6000억 원으로 커졌다. 같은 기간 세전이익은 2000억 원에서 71조8000억 원으로 359배로 뛰었다. 임직원 수는 10만 명에서 52만 명이 됐다.

삼성전자 주가는 2만9600원(취임 전날인 1987년 11월 30일)에서 193만5000원(액면분할 전으로 계산, 액면분할 후 3만8700원)으로 올랐다. 시총은 4000억 원대에서 231조305억 원으로 급성장했다. 주가는 65배로, 시총은 578배로 훌쩍 뛴 것이다. 삼성전자는 2000년 11월 21일 이후 한국 증시에서 시총 1위 자리를 한 번도 내주지 않았다.

덩치만 커진 게 아니다. 삼성그룹의 브랜드 가치 역시 크게 높아졌다.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회사 인터브랜드가 브랜드 가치를 평가하기 시작한 2000년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52억 달러로 전 세계 기업 중 43위였다. 2012년 9위, 2017년 6위에 오른 데 이어 올해는 한국 기업 최초로 5위(브랜드 가치 623억 달러) 자리를 차지했다. 삼성보다 순위가 높은 회사는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 미국의 간판 기술기업 4곳밖에 없다. 역대로 톱5에 이름을 올린 적 있는 아시아 기업은 도요타뿐이다.

홍석호 will@donga.com·강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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