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게임이 인기다. 여기서 게임을 ‘본다’는 것은 자신이 하는 게임 화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구경하거나 스포츠 경기 혹은 예능 프로그램처럼 관람/시청하는 행위를 말한다.
게임 보기를 게임을 즐기는 독립된 하나의 경험으로 부각시킨 것은 e스포츠(e-Sports)다. 1990년대 후반 PC방을 중심으로 한 오프라인 대회에서 시작해 게임전문 방송채널의 등장과 함께 체계화·전문화된 e스포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대표적인 ‘보는 게임’ 문화로 자리 잡았다.
스포츠적 요소(경쟁과 규칙, 경기를 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 경기장, 미디어를 통한 중계 등)와 연예·오락적 요소(프로게이머, 팬 등)가 결합해 스포츠 중계와 유사하며 보면서 즐기게 하는 요소들 또한 많다. 일반인의 게임 플레이를 구경하는 것과 달리 높은 수준의 경기력이 보장되고 해설이 포함되며 스포츠처럼 중계하는 데다 전지적 시점에서 플레이를 보여주기 때문에 관람객··시청자는 게임을 ‘본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현장의 조명과 음향, 중계 카메라의 구도와 시점 등은 관람객·시청자를 거의 직접 게임을 하는 수준으로까지 몰입시킨다. 덕분에 보는 사람은 게임을 직접 하고 있지 않음에도 프로게이머의 게임 플레이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
우연적인 상황에서 자의가 아닌 이유로 ‘게임 보기’를 하고 있지만 이는 구경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플레이어로서의 관람객·시청자는 ‘배운다’. 다른 플레이어, 특히 숙련된 프로게이머의 플레이를 보는 일은 자신의 플레이를 개선하고 향상하는 데 좋은 기회로 작용한다. 게임을 ‘하는’ 관람객·시청자는 다른 사람들의 플레이를 ‘보고’ 그것을 다시 자신의 게임을 ‘하는’ 데 활용한다.
경기 직관(직접 관람)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현장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한다. 현장감을 오롯이 즐기기 위해서는 시각뿐 아니라 청각, 촉각과 같은 다른 감각들까지 동원해야 하므로 잠시라도 집중을 풀 경우 현장에서 중요한 플레이 장면을 놓칠 수 있다.
미디어 기기를 통해 보는 e스포츠 경기는 반복 시청이 가능하고 VOD(Video on Demand)인 경우 지핑(zipping)도 할 수 있어 반복적으로 특정 경기를 시청해 게임 실력을 올릴 수 있다. 특히 모바일 기기를 통해서는 언제 어디서나 중계를 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실시간 댓글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시청을 할 수도 있다. 온라인상에서 불특정 다수와 같은 경기를 보며 의견을 나누는 일은 e스포츠 시청이 낳은 새로운 연대 문화로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한데 모여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특징이다. 게임 플레이를 통한 배움이 주는 즐거움뿐 아니라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주는 즐거움도 존재한다.
인터넷 게임 방송은 ‘보는 게임’의 또 다른 사례다. 아프리카TV의 게임 BJ나 유튜브(YouTube)의 게임 콘텐츠 창작자들의 인기는 연예인의 그것 못지않다. 게임 동영상 시청자가 늘면서 트위치(Twitch)나 유튜브 게이밍(YouTube Gaming)과 같은 전문 서비스의 이용도 확대되고 있다.
물론 인터넷 게임 방송도 e스포츠를 적극 수용한다. 전·현직 프로게이머가 인터넷 개인방송 채널이나 플랫폼을 통해 소규모 리그나 자신이 플레이하는 화면을 송출해 인기를 얻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터넷 게임 방송이 갖는 특징은 전문 창작자들의 방송에서 두드러진다.
인터넷 게임 방송에서 창작자는 플레이어가 되어 가상공간 속 캐릭터를 조종한다. 창작자와 캐릭터가 물리적으로 분리되기 때문에 방송 속 출연자와 게임 캐릭터의 역할도 달라진다. 게임 시작 전까지는 창작자가 방송의 대상이다. 시작 후에는 시각적으로는 게임 캐릭터를 보여주면서, 청각적으로는 창작자의 해설이나 기타 멘트, 음악 등을 들려주는 것이 인터넷 게임 방송의 일반적인 흐름이다.
바로 이 점이 인터넷 게임 방송을 e스포츠 방송과 구분 짓는다. 인터넷 게임 방송의 경우 e스포츠에서처럼 경쟁이 주가 되거나 프로급의 플레이를 보여주기보다는 창작자가 게임 플레이를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는 형태를 띤다. 요컨대 e스포츠가 프로게이머 간 예측할 수 없는 플레이에 초점을 맞춘다면 인터넷 게임 방송에서는 창작자의 해석이 중요하다. 게임규칙을 새롭게 만들어 플레이하는 경우 무난하게 게임을 플레이하되 유머러스하게 중계하는 경우 등 창작자의 역량에 따라 게임을 재탄생시킨다. 이 때문에 자신만의 콘텐츠를 시청자에게 단순히 보여만 주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로 하여금 옆에서 게임을 함께 하는 듯한 느낌도 줄 수 있다.
게임 보기는 게임 하기와 연결될 뿐 아니라 그 자체로서도 게임을 즐기는 하나의 어엿한 독립행위가 되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게임이 존재하며 게임 안과 밖을 밀접하게 연결한다는 점에서 게임을 보는 것 역시 게임을 갖고 노는 일이라 하겠다. 미디어 기술 변화, e스포츠와 인터넷 게임 방송의 점증하는 인기, 그리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만나 게임 보기는 점점 더 복잡한 유형으로 분화되고 게임을 노는 데 있어 더욱 중요한 위치를 점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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