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물도 돈…버릴게 전혀 없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자원 재활용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4일 18시 49분


코멘트
철광석은 억울하다. 철강제품으로 만들어질 때 연료로 석탄이 사용되다보니 미세먼지와 환경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탓이다. 더욱이 검고 붉은 색을 띄는 외관 때문에 그런 오해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실제로 철강제품 제작 과정에서 분진과 철가루가 발생한다. 하지만 철강업계는 철광석이 ‘친환경 자원’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방문한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슬래그 저장소는 친환경 산업으로 변모하고 있는 철강업계의 미래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시설이었다. 25t 덤프트럭 한대가 원통모형의 슬래그 저장소 아래 정차해 있는 동안 트럭 위로는 모래 형태의 슬래그가 쏟아져 나왔다. 슬래그는 석회, 규소, 알루미늄, 칼슘 등이 포함된 자연 상태의 돌과 비슷한 쇠 찌꺼기 덩어리다.

고로에서 철광석을 녹여 쇳물로 만들 때 용광로의 아래쪽에는 철이 모이고 위쪽에는 슬래그가 남는다. 고로에서 만들어진 슬래그는 저장소로 모여서 건조해지면 트럭으로 옮겨진다. 철 1t(1000㎏)을 만든다고 했을 때 약 600~700㎏의 슬래그가 만들어진다.

이정엽 포스코 광양제철소 환경자원그룹 리더는 “과거에는 버릴 수밖에 없던 슬래그가 지금은 돈이 됐다. 돈도 버리는 것이다. 철이 환경을 파괴한다고 오해하는데, 철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고 말했다.

철강산업 초창기엔 재활용 기술이 없다보니 슬래그들은 그저 쓰레기였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슬래그 활용분야가 다양해지면서 지금은 그야말로 금덩어리가 됐다. 지난해 국내 철강업계의 슬래그 생산 규모는 약 2650만t이다. 이중 포스코가 생산한 물량은 1912만t으로, 생산된 슬래그는 100% 재활용되고 있다.

슬래그의 82%는 시멘트 산업에 활용된다. 시멘트에 슬래그를 혼합하면 일반 시멘트보다 강도가 높아진다. 일반시멘트는 채집과 가공과정에서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석회석을 섞는다. 하지만 석회석 대신 슬래그를 섞으면 온실가스 배출이 22% 정도 줄어든다. 조경석 포스코 에너지환경기획그룹 상무보는 “지난해 1069만t의 슬래그를 시멘트 원료로 활용하면서 이산화탄소 839만t 정도를 감축하는 효과를 거뒀다”고 분석했다.

친환경 효과에 슬래그 시멘트를 찾는 곳이 늘면서 가격도 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말 t당 5만8000원 정도였던 슬래그 시멘트는 지난달 말엔 6만2000원에서 거래되고 있다.

슬래그는 해양생태계 복원에도 기여한다. 이른바 ‘바다숲 조성’ 사업에 활용되면서다. 포스코는 2011년 슬래그를 활용한 인공어초(트리톤)를 만들었다. 바다 속에 어초를 설치하면 이 속의 칼슘과 철 등 미네랄이 바닷물에 녹아들면서 해조류의 성장 및 광합성을 촉진한다. 또 오염된 퇴적물과 수질을 정화하는 효과도 있다.

지난해에만 인공어초 1418개가 바다숲 조성사업에 사용됐다. 세계자연보전총회(WCC)와 세계지속가능발전협의회(WBCSD)는 포스코를 2012년에 해양생태계 복원에 기여한 사례로 소개하기도 했다.

슬래그만 아니다. 포스코는 철강제품 생산의 전 과정에서 오염물질 배출을 최소화하는 ‘라이프 사이클 어세스먼트(LCA)’를 만들어가고 있다. 제품 생산을 위한 원료 채취에서부터 제조, 수송, 사용, 폐기까지 생산의 전 과정에서 사용되거나 배출되는 연료, 원료, 부산물의 재활용도를 높이는 사업모델이 가시화되고 있는 셈이다.

포스코 광양제철소를 방문한 날 생산관제센터에도 들렀다. 이곳 직원들은 공정에서 나오는 일산화탄소, 질소, 수소 등 부생가스 현황을 모니터링 하면서 9개의 홀더에 저장하고, 필요할 때마다 발전 설비로 보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들 가스는 발전설비의 동력원이다. 이지성 광양제철소 에너지부 과장은 “특정한 가스가 갑자기 많이 나올 때가 있다. 가스 비율이 유지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그럴 땐 서로 ‘빨리 빼자’는 식으로 상의하면서 가스 저장과 배송 현황을 컨트롤 한다”고 했다. 발전설비를 돌릴 때 필요한 만큼 못 보내거나 필요 없는데 많이 보낼 경우에는 가스 손실이 발생할 수 있어 항상 긴장해야한다.

이처럼 부생가스는 이제 오염물질이 아니라 환경을 지키고 돈도 벌 수 있는 자원이 됐다. 부생가스를 제때 채집해 사용하지 못하면 제철소는 따로 전기를 구해와 설비를 돌려야한다. 전기를 외부에서 사오거나 석탄 발전을 돌려야 한다는 의미다. 포스코는 부생가스의 99.54%를 재활용하고 있다. 다른 철강회사들이 90~95%를 재활하는 것을 감안하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셈이다.

이정우 광양제철소 에너지부 파트장은 “우리의 목표는 부생가스 재활용률을 99.9%까지 높이는 것”이라고 했다. 석탄 발전을 돌려서 전기를 끌어 오는 것이 더 편하고 쌀 수 있다. 하지만 그저 싸다고 환경오염에 앞장서는 기업은 앞으로 생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 시대인 만큼 기술력을 높이는 데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 제철소 위치한 포항-광양의 미세먼지, 전국 평균보다 낮아 ▼


포스코의 광양제철소 인근 주거 단지에는 실시간 미세먼지 상태를 알려주는 알림판이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은 이 알림판을 통해 실시간으로 대기 상태를 확인한다. 포스코도 제철소 터와 인근 지역에 대기질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해 미세먼지 농도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다. 환경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이 크게 높아지면서 포스코는 대기질이 급격히 나빠진 날 미세먼지를 잡아주는 집진기 등 방진시설의 가동률을 높인다. 때로 일부 공정을 중단시키기도 한다.

포스코는 미세먼지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황산화물(SOx)과 질소산화물(NOx) 배출을 대폭 줄이기 위해 2021년까지 1조 700억 원을 투자한다고 최근 밝혔다. 우선 질소산화물 배출을 대폭 낮출 수 있는 선택적 촉매환원(SCR) 설비를 확대할 예정이다. SCR란 철을 만들 때 발생하는 질소산화물이 대기 중으로 배출되기 전에 질소와 산소 등 유해하지 않은 물질로 전환시키는 설비다. SCR는 질소산화물을 약 65~85%정도 줄일 수 있다고 포스코 측은 설명했다.

또 노후화된 부생가스 발전시설 6기를 2021년까지 폐쇄하고 3500억 원을 투입해 최신 기술이 적용된 발전시설로 대체할 예정이다. 대기 중으로 여과과정 없이 배출되는 비산먼지에 대한 저감 투자도 이뤄진다. 이를 위해 공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먼지가 흩날려 밖으로 나가는 걸 방지하는 밀폐식 구조물인 사일로를 2020년까지 8기 더 설치할 예정이다.

미세먼지를 잡아주는 집진기에 스마트 기술을 접목 시켜서 실시간으로 집진상태를 체크하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포스코는 2022년까지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을 약 35% 감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사실 포스코는 매년 설비투자 예산의 10%를 환경개선에 투자해왔다. 그 결과로 제철소 인근지역의 미세먼지 농도는 지속적으로 감소해 전국 평균보다도 낮다. 2017년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제철소가 위치한 포항과 광양 지역의 미세먼지 연평균 농도는 각각 39μg/m³, 37μg/m³이었다. 이는 전국 96개 시·군 평균(45μg/m³)보다 낮은 수치다.

조요찬 광양제철소 환경자원그룹 부장 “미세먼지가 심해지면 지역주민뿐 아니라 근로자들부터 난리가 나기 때문에 미세먼지 저감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 할 수가 없다”며 “질소 함량이 낮은 무연탄을 사용해 용광로를 돌리고 차량 2부제에 참여하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양=변종국 기자 bj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