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부포세대’ 자녀에 신세 안진다면서… 63%가 “노후 대책은 없다”

박성민 기자 , 김성모 기자 입력 2018-05-04 03:00수정 2020-09-03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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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셋은퇴연구소 2001명 설문 건축회사에 다니다가 2년 전 퇴직한 이규성(가명·55) 씨는 ‘캥거루족’ 아버지다. 3년 전 결혼한 큰아들 부부를 데리고 산다. 취업 준비 중인 아들과 직장에 다니는 며느리를 대신해 손녀를 돌보는 것도 이 씨의 몫이다. 아내가 식당을 운영하며 가계를 책임지고 있어 생활비 마련엔 걱정이 없다. 하지만 올해 미대에 입학한 둘째 아들(20)의 학비와 유학, 결혼 비용까지 아직 목돈 들어갈 일이 수두룩하다.

이 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4년 동안 직접 간병도 했다. 노부모를 돌보며 자식 뒷바라지에도 아낌없이 투자하는 한국의 흔한 5060세대인 것이다. 하지만 ‘자식에게 베푼 만큼 나도 부양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이 씨는 “직장에서 하루하루 힘들게 버티는 젊은 세대에게 짐이 되기 싫다”며 “노년엔 자식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 실버타운에 들어가 살 생각”이라고 말했다.

○ 50, 60대 79% “자녀 부양 기대 안 해”

이 씨처럼 자녀에게 부양받기를 기대하지 않는 50, 60대가 늘고 있다. 자녀가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부양 관념이 옅어진 데다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자녀에게 부양받는 것을 포기하는 ‘부포족(族)’이 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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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미래에셋은퇴연구소의 ‘2018년 은퇴 라이프 트렌드 조사’에 따르면 50, 60대의 79.6%는 자녀에게 노후 지원이나 간병 등의 부양을 기대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응답자의 43.9%는 ‘자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본인은 부양받길 원치 않지만 응답자의 73%는 ‘현재 노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번 조사는 50∼69세 2001명을 대상으로 했다.

노후 부양에 대한 남녀 간 인식 차도 뚜렷했다. 자녀에게 부양을 기대하지 않겠다는 응답은 남성이 10%포인트 이상 많았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녀와의 관계에 친밀하지 않은 남성은 스스로 노후를 책임지겠다는 인식이 강한 반면에 여성은 아직 자녀가 나를 돌봐줄 것이라는 기대가 많다”고 설명했다. 또 남성은 노후에 ‘부부끼리 살고 싶다’(77.4%)는 응답이 여성(61.6%)보다 훨씬 높았지만 여성은 ‘혼자 살고 싶다’(15.5%)는 응답이 남성(8.9%)의 두 배에 가까웠다.

○ “부양의무 대물림하지 않겠다”

베이비붐(1955∼1963년생) 세대를 포함한 50, 60대는 부양의 대물림을 끊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두 자녀를 의대와 약대에 보낸 정모 씨(56·여)는 “전쟁을 겪은 부모 세대에 비해 우리는 고생을 덜한 세대다. 아이들을 실컷 교육시키는 것도 우리 세대의 즐거움이었다”며 “자녀들이 이를 심리적, 물리적 빚으로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년실업 문제가 악화되면서 자녀들의 경제적 수준이 부모를 부양할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점도 부포족이 늘어나는 데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무성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녀들이 괜찮은 일자리를 얻거나 부모보다 풍족하게 살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부양을 받을 것이라는 부모 세대의 기대가 줄어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조사에서 월평균 소득이 908만 원인 소득 5분위(상위 20%)에서는 51.3%가 ‘경제적 지원을 받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이 비중은 소득이 낮을수록 줄었다. 하지만 월평균 소득이 243만 원인 소득 1분위(하위 20%)에서도 응답자의 36.7%가 경제적 지원을 거부했다. 남편이 택시 운전을 해 한 달에 200만 원가량을 버는 박모 씨(65·여)는 “마흔을 앞둔 아들이 아직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해 집을 줄여 노후자금을 마련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 5060세대 노후 대비 현실 열악

하지만 5060세대의 노후 대비는 열악했다. 이번 조사에서 노후 준비를 완벽하게 마쳤다는 응답은 6.7%에 불과했다. 62.9%는 ‘노후 대비가 어렵거나 마땅한 대책이 없다’고 답했다.

노후 준비가 안 돼 있는 5060세대가 현재의 2030세대에게 부양마저 기대할 수 없다면 노년기의 경제적 어려움이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조사에서 ‘노후 준비에 지장이 없을 것 같다’는 응답도 30% 정도였지만 이들 역시 은퇴 이후 병원비, 자녀 지원 등 갑작스러운 목돈 지출로 계층 추락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한경혜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자녀 유학 비용, 결혼 비용, 주택 마련 등 ‘자녀 지원 3종 패키지’를 무조건 해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며 “퍼주기식 자녀 지원보다는 본인 노후를 위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성민 min@donga.com·김성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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