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한푼 안들이고… 부활하는 현대상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8일 03시 00분


부채율 400%이하 ‘클린 컴퍼니’로

현대상선이 25일 채권단의 출자전환을 통해 부채비율 400% 이하의 ‘클린 컴퍼니’로 새 출발을 하게 된다. 현대상선의 구조조정은 4조5000억 원을 지원받고도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간 STX조선해양이나, 4조2000억 원을 지원받기로 한 대우조선해양과 달리 ‘혈세’와 같은 국책은행의 추가 자금이 한 푼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때문에 용선료 조정 협상을 통한 ‘헤어 컷(채무 삭감)’과 대주주와 사채권자의 고통 분담, 해운 동맹 가입과 출자전환을 통한 ‘현대상선식 구조조정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 고통 분담으로 도덕적 해이 방지

현대상선 구조조정은 ‘주주와 경영진, 채권단 등이 책임을 분담해 도덕적 해이를 막아야 한다’는 기업 구조조정 원칙이 통한 대표적 사례다. 2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모친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은 총 300억 원의 사재를 내놓았다. 이달 15일엔 현대상선이 대주주 7 대 1 무상감자안을 확정했다. 이렇게 되면 현대엘리베이터, 현대글로벌, 현 회장 등 대주주가 보유한 지분은 20.93%에서 1%대로 줄어들게 된다.

과거와 달리 사채권자의 비중이 커진 최근 기업 상황에서 참고할 만한 선례도 만들었다. 5월 사채권자들은 회사채의 50%를 출자전환하고 잔여 채무액을 2년 거치, 3년 분할 상환하는 데 동의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사채권자 채무조정은 ㈜STX를 제외하고 선례가 거의 없었다”며 “배를 빌려준 선주들도 출자전환을 통해 고통 분담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 ‘자체 자금 조달’ 원칙

‘기업 구조조정은 자구안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원칙도 다시 확인됐다. 현대상선은 ‘돈 되는 것은 다 팔아’ 스스로 자금을 조달했다. 현대상선은 2013년 12월 채권단에 3조3000억 원대 자구안을 제출한 이후 지난해 말까지 3조5822억 원을 조달했다. 목표액의 8.6%를 초과하는 금액이었다. 올해도 사정이 나아지지 않자 1조5200억 원을 추가로 조달했다.

특히 4월 그룹의 캐시카우였던 현대증권 등 금융 3사를 1조2500억 원에 매각한 것이 터닝 포인트가 됐다. 채권단 관계자는 “금융사 매각으로 8000억 원 이상의 현금이 유입됐다”며 “용선료만 깎아준다면 회사가 자체 유동성을 통해 생존할 수 있다는 ‘지속 가능성’을 증명한 것이 선주를 설득한 결정적 계기”라고 설명했다.

○ 치밀한 협상 전략

글로벌 해운업계는 현대상선의 용선료 조정이 4개월 만에 끝난 것을 이례적으로 받아들인다. 용선료 조정의 유일한 선례인 이스라엘 짐(ZIM)의 협상은 2014년부터 1년 이상 걸렸다.

협상 과정에서 정부와 채권단은 강경한 입장으로 선주들을 압박했다. 4월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5월 중순까지 용선료 협상이 완료되지 않으면 채권단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법정관리밖에 없다”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채권단은 현대증권 매각 자금이 용선료를 갚는 데 쓰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용선료를 약 21% 깎는 데 성공했다.

○ 영업력 회복해야 경영 정상화 가능

현대상선은 최근 세계 1, 2위 해운선사의 동맹체인 ‘2M’ 얼라이언스 가입에 성공하며 향후 영업 기반을 확보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해운시황이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데다 당장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벌크선 사업처럼 ‘돈이 되는 사업’을 모두 매각해 버렸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은 출자전환이 완료되더라도 2018년까지 적자를 볼 것으로 자체 전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영업력 회복으로 구조조정의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간 법정관리에 대한 우려로 화물을 맡기지 않았던 화주들을 다시 끌어와 영업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벌크선 비중을 확대해 컨테이너선 의존도를 줄이고, 항로를 다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형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해운시장분석센터장은 “매출의 62%가 유럽 및 북미 항로에서 나오고 있다”며 “사업 범위를 호주, 남미, 아프리카 등으로 확대해 유럽 및 북미 항로의 시황 변동 위험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김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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