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해운 3만명 실직위기… 일자리 추경으로 충격 줄여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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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대개조/이제는실행이다]

대전 서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김유정(가명·49·여) 씨는 배달을 나가 거스름돈을 줄 때 종종 “돈 세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는다. 겉으로는 웃고 넘기지만 속으로는 18년 전의 악몽이 떠오른다.

은행원이었던 김 씨의 인생은 외환위기 때인 1998년 몸담고 있던 충청은행이 퇴출되면서 180도 바뀌었다. 회사는 하나은행(현 KEB하나은행)에 흡수됐고, 그는 명예퇴직을 택해야만 했다. 김 씨는 “은행을 그만둔 뒤 한 번도 명함 건넬 만한 직업을 갖지 못했다”며 “다시는 나 같은 구조조정 피해자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선 해운 등 취약업종 구조조정이 급물살을 타면서 앞으로 늘어날 실업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선제적으로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에 내몰린 사람 상당수가 재기에 실패하며 사회 양극화 문제를 야기한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 급한 불을 끄고, 중장기적으로는 하청업체 근로자 등 고용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위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구조조정 실업 막는 ‘실탄’ 필요


본격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조선업은 20만5000명, 해운업은 2만4000명의 종사자들이 몸담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들 가운데 15%가량인 3만4000명 안팎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추산한다.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등에서만 실직자가 나오고 조선소 협력업체와 인근 식당 종사자까지 감안하면 대규모 실업대란이 예상된다.

이 때문에 실업 충격을 막기 위해 이른바 ‘일자리 추경’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올해 1분기(1∼3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4%(전 분기 대비)에 머물면서 저성장 장기화에 따른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도 추경을 편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행 국가재정법은 추경 편성 요건을 엄격하게 정하면서도 대량실업 사태가 발생하면 추경을 편성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는 1998년 외환위기와 2009년 금융위기 당시 추경으로 실업자 흡수에 나섰다. 근로자들을 설득해 구조조정의 추동력을 얻기 위해서라도 재정을 투입한 실업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과거 단행했던 추경이 단기적으로 실업률을 낮추는 데는 성공했지만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2013년(17조3000억 원)과 2015년(11조3000억 원) 두 차례 추경을 집행해 올해 국가채무가 처음으로 GDP 대비 40%를 넘을 것으로 전망될 정도로 재정 여건은 악화됐다. 이런 마당에 재차 추경에 나설 경우 없는 살림을 쥐어짜 실탄을 마련해야 하는 만큼 나라 곳간을 헐어 단기적 일자리만 만드는 것은 지속가능한 고용 환경 조성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로선 추경 편성을 고려하고 있지 않지만 꼭 필요하다면 못할 이유도 없다”고 밝혔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부실기업 실업자 지원에 초점을 맞춰 지속가능한 고용 사회안전망이 구축될 수 있도록 재정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사회안전망 사각지대 해소해야


산업 구조조정의 가장 취약한 계층은 하청근로자다. 이들은 대기업이 아닌, 하청업체 소속이기 때문에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구조조정 시 가장 먼저 해고될 운명에 놓인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조선업은 전체 근로자 20만5000명 가운데 사내하청 근로자가 13만6000명으로 무려 66%에 이른다. 10∼30% 수준인 자동차, 철강 등 기타 제조업보다 훨씬 높다. 조선 3사가 호황기 때 해양플랜트 사업 투자를 늘리면서 사내하청을 대거 활용했기 때문이다.

현재 고용부는 실업자에게 최대 240일까지 실업급여를 지급하고, 취업성공 패키지 등을 통해 이직·전직 훈련도 제공한다. 정부가 26일 구조조정 협의체에서 내놓은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이 이뤄지면 실업급여를 6개월 더 받을 수 있고, 다양한 직업훈련도 제공된다. 그러나 이 정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그동안 하지 못했던 공공사업을 대거 일으켜 공공 일자리를 많이 만들면 해고된 하청근로자들을 흡수할 수 있다”며 “일자리를 나누기 위해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제조업에도 파견을 허용해 하청근로자를 파견직으로 끌어올리는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제조업은 현재 파견이 엄격히 금지돼 있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경제학과)는 “독일도 조선업을 구조조정하면서 제조업에 파견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근로조건을 끌어올렸다”며 “제조업도 파견을 허용하되 아웃소싱은 줄이는 식으로 인력구조를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훈 january@donga.com·유성열 기자
#조선#해운#실직#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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