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핵연료 처리 ‘발등의 불’… 골든타임 놓치면 안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본보-원자력환경공단, 지상 좌담회

《 한국에서 쓰는 전기의 약 30%는 원자력발전을 통해 생산한다. 석탄 화력이나 풍력 발전에 비해 값싸고 안정적이지만 공짜는 아니다. 번거롭고 쉽지 않지만 반드시 처리해야만 할 ‘대가’들이 적잖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업무는 그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1978년 국내 첫 원전인 고리1호기가 가동을 시작한지 38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번도 그 대가가 지불되지 않았다. 현재도 원자력발전소에는 사용후핵연료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2019년이면 월성원전부터 사용후핵연료 보관창고는 포화상태에 달해 더 이상 원전을 가동할 수 없게 된다. 정부는 뒤늦게 ‘사용후핵연료 관리 기본계획’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사용후핵연료 관련 특별법’은 곧 출범할 20대 국회의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동아일보는 한국원자력환경공단과 함께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각계 전문가를 초청해 좌담회를 가졌다. 홍수용 동아일보 논설위원의 사회로 박영규 명지대 법학과 교수, 이근대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자력정책실장, 임춘연 경주시학부모회장,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가 참석해 발등에 떨어진 불, 사용후핵연료의 관리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
3월 24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 한국원자력환경공단 기금관리센터에서 정범진 경희대 교수, 홍수용 동아일보 논설위원, 
임춘연 경주시학부모회장, 박영규 명지대 교수, 이근대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자력정책실장(왼쪽부터)이 사용후핵연료 처리 해법을 놓고 
토론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3월 24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 한국원자력환경공단 기금관리센터에서 정범진 경희대 교수, 홍수용 동아일보 논설위원, 임춘연 경주시학부모회장, 박영규 명지대 교수, 이근대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자력정책실장(왼쪽부터)이 사용후핵연료 처리 해법을 놓고 토론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사용후핵연료란 무엇인가.

▽정범진 교수=원자로에 들어가서 타고 남은 핵연료로 일종의 연탄재 같은 것이다. 우라늄을 원자로에서 태우면 5%만 핵분열이 되고, 나머지 95%는 강한 방사선과 높은 열을 내뿜는 사용 후 핵연료가 되는데, 열과 방사성물질이 없어질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위험한 물질처럼 보이기 쉽지만 관리하는 일은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다.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격리시키고 열과 방사능을 막으면 된다. 사용후핵연료를 다시 쓰는 것이 재처리, 인간세계로부터 최대한 격리시켜 지하수가 없는 암반에 완전히 묻는 것이 영구처리다. 재처리를 하더라도 타고 남은 물질이 생기기 때문에 결국 영구처리 해야 한다.

―그런데 왜 지금에서야 문제가 된 것인가.

▽이근대 실장=그동안은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내에 저장해 왔다. 하지만 이제 전체적으로 70% 이상 채워져 2019년 월성원전부터 포화가 된다. 반드시 준비하고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이지만, 사회적 공감대 부족으로 아직까지 정책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정 교수=원자력발전소를 처음 만들 때만 해도 원자력공학자들은 사용후핵연료 처리는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 방사성이 많을 뿐 처리 자체가 기술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30년 가동하는 원전에서 10년 정도 갖고 있다가 포화가 되면 다른 곳에 옮겨서 보관하고, 그 사이 영구처분시설을 만들면 된다는 것이 기본 개념이었다. 그런데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 인해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안에 계속 쌓아둘 수밖에 없게 됐다. 원전 내 저장시설이 부족해지자 사용후핵연료를 2층으로 쌓아 조밀화하고, 수조가 비어있는 신규 원전에 넣는 방식으로 포화시점을 늦추고 있지만, 이제는 그렇게 할 여유 공간이 없다.

―그렇다면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박영규 교수=복잡한 문제일수록 법규화 제도화를 통해 풀어야 한다. 2009년 여야 합의를 통해 정부가 처리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만들었고, 이후 만들어진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지난해 6월 최종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권고안에는 사용 후핵연료 처분장과 지하연구소(URL), 처분 전 보관시설을 한 곳에 모아 관리하고, 2020년부터는 사업용지선정 절차에 착수할 것을 주문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정부가 이를 토대로 사용 후 핵연료 관리 기본계획을 마련하고 있다고 하는데, 기본계획에는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안전하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앞으로 사업지로 선정될 지역에 대한 보상문제 등 구체적인 정책이 담겨야 한다. 특히 핵심은 지역주민과의 합의를 통한 사업후보지 선정이다. 여러 갈등요소가 있겠지만, 이제 정부도 눈치만 보지 말고 구체적인 안을 담은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정 교수=한국 전체 수입의 3분의 1이 에너지 생산을 위한 자원 수입에 쓰인다. 반도체, 자동차 수출액을 합친 것보다 많다. 여기에다 신기후체제로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37% 줄여야 한다. 그런데 신재생에너지는 아직까지는 경제성이 떨어진다. 한국에서 당분간 원자력 발전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원자력 발전의 부산물인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도 당연히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한다.

▽이 실장=국가에너지계획 차원의 원자력 정책과 그동안 전기 사용의 부산물로 이미 발생해버린 사용후핵연료 관리 문제는 분리해서 다뤄야 한다. 앞으로 원자력 발전을 계속하든 하지 않든 이미 나온 사용후핵연료 처리는 불가피한 것이다.

―월성원전이 가장 먼저 포화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경주 시민으로서 걱정이 많을 것 같다.

▽임춘연 회장=경주시민들은 헷갈린다. 처음에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에 대한 반대가 심했는데, 준공이 된 지금은 원자력환경공단, 한수원이 이전해 오면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고 원자력해체연구원을 유치하겠다는 공약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해 학부모 모임에서 원자력환경공단에 견학을 갔는데, 어떤 학부모는 “나중에 우리 아이 원자력 과학자를 시켜야겠다”고 할 정도로 안심하게 됐다. 하지만 사용후핵연료가 경주로 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지금 우리가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 자식들에게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넘기는 것이다. 자식에게 짐을 넘기는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루 빨리 사용후핵연료 처리를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한다.

▽이 실장=법으로 사용후핵연료는 경주에 못 가게 돼 있다.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우리 세대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다.

▽박 교수=경주 시민들을 보면 알 수 있듯,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문제를 쉽고 정확하게 국민의 눈높이에서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사용후핵연료가 폭발하는 게 아니냐고 할 정도로 막연한 공포심을 갖고 있는 이들도 있다. 과학에 대한 맹신만큼 위험한 것은 막연한 공포심을 조장하는 것이다.

―갈등을 우려한 나머지 어느 쪽에서도 적극적으로 논의하기를 꺼려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할 골든타임이 흘러가고 있다. 정부 등 관련 주체에 당부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정 교수=결국 기술공학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공학적 문제다. 중저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 때 처음에는 관심 갖는 지역이 없다가 특별법을 통해 지역에 돌아가는 혜택을 설명하니까 2005년에는 서로 유치하겠다고 경합을 하기도 했다. 의외로 정부가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고 논의하기 시작하면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

▽이 실장=정부는 부담되는 일을 하지 않으려 하고, 반대하는 쪽에서는 불신과 위험만 강조한다. 정책적 결정이 늦어질수록 비용은 커지고 미래 세대의 부담은 늘어난다.

▽박 교수=원전이나 에너지 정책은 미래까지 고려해야 할 문제이지만, 사용후핵연료는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우리 세대에 만들어진 사용후핵연료는 우리 세대에 끝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임 회장=결국 소통이다. 국민들이 제대로 알고 괜한 걱정하지 않도록 정보를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알려주고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 사용후핵연료 ::


원자력발전소에서 연료로 사용된 뒤 폐기물로 나오는 우라늄 연료 다발. 강한 방사선과 높은 열을 내뿜는 위험물질이기 때문에 특수기술을 이용해 지하 수백 m 깊이에서 안전하게 영구처리해야 한다.

::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


원자력발전소 등에서 사용된 작업복, 장갑, 부품 등 방사능 함유량이 미미한 폐기물.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로 혼합해 드럼에 넣어 응고시킨 뒤 보관하며, 자연 방사능 수준으로 방사능이 떨어질 때까지 격리시킨다.

::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


방사성폐기물 중에서도 방사능 함유량이 높은 폐기물로 사용후핵연료나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고 남은 부산물 등이 포함된다.


#사용후핵연료#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고준위 방사성폐기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