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초 결혼을 앞둔 직장인 A 씨(35)는 정부가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70%로 일괄 상향하는 방안을 최종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에 한시름 덜었다. 그는 직장에서 가까운 서울 마포구 뉴타운 분양권을 매입하려고 알아봤지만 대출을 받아도 돈이 턱없이 부족했다. 전용 59m²의 시세가 5억5000만 원 안팎이라 손에 쥔 2억 원에 은행 대출을 최대한도로 받아도 7500만 원가량이 모자랐다. A 씨는 “전셋집을 구할까 했는데 이번에 다시 내 집 마련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며 “LTV가 70%로 올라가면 3억8500만 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어 집을 살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부동산 규제 완화에 힘을 실어주고, 금융 당국도 LTV를 지역에 관계없이 70%로 올리기로 가닥을 잡으면서 부동산 시장에서 조금씩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3월 임대소득 과세 방침 이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갔던 부동산 중개업소에도 모처럼 상담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는 6월 중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LTV,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발언을 내놓은 직후부터 서서히 시작됐다.
재건축 추진 단지인 서울 강동구 고덕로 고덕주공2단지 아파트 인근 LG부동산 강종록 공인중개사는 “주변 아파트에서 전세로 살던 신혼부부들이 ‘지금 매매계약을 하면서 계약금만 내고 대출 규제 완화 후에 대출을 더 받아 잔금을 치러도 되겠느냐’라고 묻는다”면서 “6월 중순 이후 거래된 물량의 30%가 이런 계획을 가진 신혼부부의 거래였다”라고 말했다.
아파트 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로 내놨던 매물이 회수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급매물이 거의 소진됐고 잠실엘스 아파트 전용 84m²는 최근 한 달 새 호가가 2000만∼3000만 원 올랐다”면서 “내놨던 물건을 회수한 집주인도 많다”고 말했다.
채정석 ㈜신영 이사는 “실제 집을 사려는 수요자들에게 대출 규제 완화는 가장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이라며 “막연한 기대감을 넘어 실거래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특히 집값이 비싸 진입장벽이 높았던 서울 강남권의 매매거래가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고성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금융위기를 겪었던 미국이 모기지 규제 완화를 통해 부동산을 살려 전체 경기를 개선시키는 데 효과를 거뒀다”며 “부동산시장 활성화가 내수 경제 활성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인위적인 부동산시장 부양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투자 수요가 이미 상가 등 다른 시장으로 많이 옮겨간 만큼 거래량이 일부 늘어날 순 있어도 가격이 그만큼 올라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분양가 상한제 탄력 운영,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 등 정부가 공언한 다른 규제 완화책들이 빨리 시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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