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소원땐 ‘헌재까지 가보자’로 변해… 어떻게 표현해도 결국 ‘4심제’ 되는것”

  • 동아일보

법원행정처장 지냈던 조재연 前 대법관
헌법엔 ‘대법이 최종심’ 규정
재판 장기화 등 부작용 훨씬 커… 충분한 공론화 반드시 거쳐야

성균관대 석좌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조재연 전 대법관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하며 재판소원 등에 대한 신중 의견을 설명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성균관대 석좌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조재연 전 대법관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하며 재판소원 등에 대한 신중 의견을 설명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어떤 수사적 표현을 하더라도 결국 재판소원은 ‘4심제’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조재연 전 대법관은 1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재판소원’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조 전 대법관은 “4번이고 5번이고 여러 번 재판을 받을 수 있다면 권리구제 수단 확대라는 한 가지 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볼 여지도 있지만, 재판은 어느 단계에선 종결이 돼야 분쟁이 끝난다”며 “우리 헌법과 사법 시스템이 이상과 현실 사이의 조화점을 찾아 3심제를 바탕으로 운영돼 온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이른바 ‘재판소원법’)은 법원의 확정 판결에 대해서도 헌재가 다시 다룰 수 있도록 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조 전 대법관은 이에 대해 우려를 표한 것.

조 전 대법관은 재판소원법이 통과되면 헌법이 각각 독립적으로 보장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권한과 역할을 일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헌법은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위상이 높다는 게 아니라 대법원의 판단이 재판에서 마지막 ‘최종심’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며 “재판소원이 도입되면 해방 후 80년간 국민들이 상식으로 여겨 온 ‘대법원까지 가면 재판이 끝난다’는 말이 ‘헌재의 재판소원까지’란 말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흔히 헌법에 대한 해석은 헌재만이 유일하고, 최고의 기관으로 흔히 생각하지만 헌법에는 입법부의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는 헌재가, 행정부의 명령 규칙 등에 대한 위헌심사는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하도록 이원화돼 있다”며 “헌재가 이 같은 대법원의 판단을 다시 심사한다고 한다면, 헌법 규정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구체적 사건의 재판권은 법원에 속하고, 대법원이 최고·최종심이라는 헌법이 규정한 사법 시스템을 헌법 개정이 아닌 법률 개정만으로 한순간에 뜯어고치는 것”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조 전 대법관은 특히 재판소원이 도입되면 결국 현행 3심제가 실질적인 4심제로 변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재판소원은 헌법적 심사, 즉 기본권 침해 여부만을 다투기 때문에 재판과는 다르다고 하는 목소리도 있다”며 “하지만 사실관계, 증거 채택, 법률 해석 및 적용 등을 제대로 들여다봐야 비로소 기본권이 침해됐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판소원이 ‘4심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법관들은 법률만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에 의해’ 재판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 전 대법관은 사법시험 22회에 수석으로 합격한 뒤 10년간의 판사 생활을 거쳤고, 변호사로 20여 년간 활동했다. 이후 2017년 대법관에 임명됐고, 2019년 1월부터 2년 4개월간 법원행정처장을 맡기도 했다. 법원 안팎에선 재판 실무와 법조 시장 이해, 사법행정 등에 두루 능통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재판소원 도입으로 인한 긍정적인 측면보다 예상되는 부작용이 훨씬 크다고 지적했다. 조 전 대법관은 “한 번 더 재판받을 기회가 생긴다는 점에선 긍정적일 수 있지만, 지금도 대부분의 사건들은 ‘1, 2심에서라도 빨리 처리해 달라’는 요구가 가장 크다”며 “헌재의 본안 사건의 평균 심리 일수가 700일이 넘는데, 재판소원까지 다룰 경우 훨씬 더 사건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판소원을 도입한 독일의 경우에도 연방대법원의 재판에 대한 인용률(결론이 뒤집힐 확률)이 거의 0%대인데, ‘수천 건 중 한 건이라도 기본권을 구제해야 한다’는 이상론과 한정된 사법 자원의 효율적 분배란 현실 사이에서 냉철한 분석을 거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회의 재판소원 추진 과정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속도전에 매몰돼 있다며 “충분한 공론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법원행정처장으로 재직할 때 상고심 제도 개선을 두고도 상당한 공론화를 거쳤지만 아직도 명확한 해답이 나오지 않은 상태”라며 “재판소원은 국가의 통치구조 중 하나인 사법제도 개편임에도 지난해 5월 전엔 국회에서 논의나 공론의 절차도 없었고, 지난해 말부터 갑자기 추진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재판소원#4심제#조재연#대법관#사법제도#헌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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