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4시 40분 서울중앙지법 424호 형사법정. 300억 원대 회삿돈을 횡령하거나 유용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로 구속 기소된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의 재판에 담 회장의 아내인 이화경 오리온그룹 사장(55)이 증인 자격으로 출석하자 법정은 순간 술렁였다. 이날 검은색 정장 차림에 물방울 모양 귀고리를 한 채 나타난 이 사장은 증인석에 앉은 뒤 분홍색 접착식 메모지를 꺼내 명패에 붙인 뒤 진술을 시작했다. 메모지 두 장에는 검은색 펜으로 쓴 글씨가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이 사장은 증인석에서 “창업자의 딸인 저로 인해 회장인 남편이 회사 경영에서 소외된 때도 많았다”며 “이런 구조가 정착되면서 서로 챙기지 못하는 부분이 생기는 것을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장은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담 회장과 결혼했을 때의 심경도 얘기했다. 그는 피고인석에 앉은 남편 담 회장을 바라보며 “남편이 화교라는 이유로 집안 반대가 심했다”며 “먼 미래에 중국시장이 열릴 때 이 사람의 가치를 보자며 가족을 설득했다”며 눈물을 쏟았다. 피고인석에 앉아있던 담 회장은 손수건으로 연방 눈물을 훔쳤다. 또 “남편은 본인이 가졌던 에너지를 해외시장 개척에 쏟아 경쟁사보다 앞서 도쿄(東京)와 베이징(北京) 등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며 “남편이 구속된 두 달여 동안 오리온그룹은 ‘전시상황’과 같다”며 선처를 부탁했다. 선처를 부탁하는 진술이 계속되자 재판장인 한창훈 부장판사는 “아직 유무죄가 인정된 상황이 아니다”며 선을 긋기도 했다.
증인신문이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선 이 사장은 증언 당시 참고했던 메모지를 떼어내 회수한 뒤 법정 문을 나섰다. 그는 “메모지에는 뭐가 적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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