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상장사 실적 국제회계기준으로 산정… 기업들 회계혼란에 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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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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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들 “실적 개선? 악화? 헷갈려”

#1. 매년 4월 말 1분기 실적을 발표하던 롯데쇼핑은 올해 실적공시를 5월 말로 늦췄다. 올해부터 국제회계기준(IFRS)으로 상장기업의 실적 평가 방식이 바뀌면서 작성해야 할 자료가 워낙 방대해졌기 때문이다. 새 회계기준으로는 지분을 50% 이상 보유하거나 지분이 없어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모든 계열사를 포함해 재무제표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롯데쇼핑은 국내 자회사 5곳, 해외 자회사 3곳을 새로 넣어 실적공시 준비를 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재무제표에 새로 들어오고 나가는 작은 기업이 많다”며 “재무제표 작성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실적발표를 최대한 늦췄다”고 말했다.

#2. 삼성물산은 1분기 영업이익이 1664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44.1%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어닝쇼크’에 가까운 실적이지만 삼성물산 주가는 오히려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 실적은 새 회계기준이 도입되면서 생긴 ‘착시 현상’으로, 예전 방식으로는 실제 영업이익이 늘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작년 1분기 때는 자회사인 삼성SDS의 삼성네트웍스 합병 관련 이익(1624 원)이 투자자산 처분이익으로 반영됐지만, IFRS 기준에서는 영업이익으로 잡히면서 올해 증가분을 깎아먹었다는 설명이다. 박형렬 SK증권 연구원은 “실적은 좋아졌는데 영업이익은 감소한 것처럼 나타났다”며 “새 회계기준 도입에 따라 당분간 투자자들의 혼란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

○ 기업들, 회계 혼란에 빠졌다


국내 상장기업들이 모회사와 자회사 실적을 연결하는 ‘연결재무제표’가 중심이 되는 IFRS로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투자자들이 큰 혼란에 빠졌다. 기업이 보유한 부동산이나 금융상품 등 자산과 부채를 취득원가가 아닌 실제 가치로 산정하도록 하는 등 재고와 자산 평가, 감가상각 평가 방식, 영업이익 항목 등 재무제표 핵심 내용이 크게 달라지면서 기업실적이 좋아진 것인지, 나빠진 것인지 헷갈린다고 하소연하는 투자자가 많다. 기존에 나타나지 않던 악재와 호재가 드러나면서 주가수익비율(PER)과 주가순자산비율(PBR), 자기자본이익률(ROE) 등 주요 지표의 착시 현상도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한 기업의 모든 계열사를 포함한 실제 가치를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것이 새 제도의 목적이다. 이에 따라 얼마나 우량한 자회사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실적은 크게 달라진다. 대표적인 곳이 1분기 비상장 자회사의 실적을 모두 포함해 발표하는 LS다. 상장 자회사인 LS산전을 비롯해 비상장 자회사인 LS전선과 LS엠트론의 실적을 포함한 LS의 1분기 매출액은 약 3조 원, 영업이익은 1500억 원 정도로 작년보다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지산 키움증권 연구원은 “기존 제도로는 지주사의 경우 지분만큼 자회사 실적이 반영됐지만, 새 기준으로는 자회사 매출액 합계가 지주사의 매출액이 되기 때문에 숫자 자체가 엄청 커진다”며 “기업가치는 그대로인데 수치 자체가 커지면서 투자자에게 혼선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 경쟁기업 비교도 어려워져

또 새 제도에서는 같은 업종이라도 기업마다 회계처리 방식이 달라 기업 간 비교가 어려워진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예를 들어 1분기 영업이익(844억 원)이 지난해보다 37.76% 감소한 GS건설은 실적 부진 이유를 “기존 회계기준에서는 영업외 손실로 잡힌 환 관련 손실이 IFRS 기준에서는 영업이익으로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삼성물산은 영업으로 발생한 환 관련 손익은 영업이익에 반영하지만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금융에서 발생한 환손익은 금융이익으로 따로 계산한다. 1분기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1조1933억 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한 SK이노베이션은 원유재고 평가 기준이 달라지면서 ‘어닝 서프라이즈’를 달성했다는 평가가 많다. SK이노베이션은 나중에 들여온 원유를 먼저 출고되는 것으로 계산하는 ‘후입 선출법’ 방식의 재고 평가 기준을 쓰다가 재고를 평균해서 계산하는 ‘총평균법’으로 바꿨다. 하지만 에쓰오일은 선입선출법을 재고 평가 방식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같은 업종이라도 경쟁기업끼리 실적을 1 대 1로 비교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지분 50% 이상 보유 기업을 포함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계열사를 포함해야 한다’는 애매모호한 기준도 문제다. 현대차는 IFRS를 처음 적용한 1분기 실적에 기아차 실적은 제외했지만 지분 31.5%를 보유한 현대카드 등 금융계열사는 포함했다. 현대카드 지분이 50%가 되지 않지만 이사 선출 등을 통해 실질적인 지배 관계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한편 자산 2조 원 이상 기업이 올해부터 분기 및 반기, 연간 재무제표를 모두 IFRS 방식의 연결 기준으로 작성해야 하는 것과 달리 2조 원 미만 기업은 2013년부터 새 제도를 적용하면 된다. 2년간 한시적으로 분기 및 반기 보고서를 연결이 아닌 별도 재무제표로 공시하고, 대신 연간 재무제표만 연결 기준으로 공시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노근환 한국투자증권 투자전략부장은 “2조 원 미만 기업은 분기 실적을 더해도 연간 실적과 달라지는 데다 연간 실적을 추정하기 어려워 PER 등의 기업가치를 따지기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국제회계기준(IFRS·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 ::


국제회계기준위원회가 제정한 기준으로 연결재무제표 작성과 공정(실제)가치 평가가 기본 원칙. 유럽에서 발달해 유럽연합(EU) 국가들은 2005년부터 모든 상장사에 적용했으며 한국은 올해부터 전면 도입됐다. 미국은 2014년 이후, 일본은 2015∼2016년 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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