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 떠난 월가에 호텔-아파트 속속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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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 중심지’ 지형 변화 가속

23일 미국 뉴욕 월가 중심부. 뉴욕증권거래소 맞은편에서 한 블록 떨어져 자리 잡은 35층짜리 고급 아파트 ‘20 Pine The Collection’에 분양 중이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한때 JP모건이 사용했던 이 건물은 리모델링을 통해 고급아파트 409채로 탈바꿈했다. 바로 옆에는 뉴욕연방준비은행 건물이 붙어 있고, 25층 높이에 있는 야외 수영장에서는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 보인다. 뉴욕 부동산회사에 따르면 아파트의 90% 정도가 분양됐는데 주로 월가에서 일하는 젊은 임직원들이 입주했다.

내로라하는 미국의 금융회사들이 몰려 있어 세계 금융의 중심으로 불리던 월가 모습이 바뀌고 있다. 금융회사들이 속속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대신 그 자리에 호텔, 아파트 등이 들어서고 있다. 월가에 포진해 있던 금융회사들이 주로 옮겨가는 곳은 인근 맨해튼 미드타운이나 뉴저지. 월가에 비해 건물 임대료가 싼 데다 전자거래 기술의 발달로 뉴욕증권거래소와 굳이 가까이 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2001년 9·11테러 이후 시작된 금융회사들의 월가 탈출 러시는 최근 더욱 속도를 높이고 있다. 골드만삭스 등 대형 금융회사들은 아직 월가를 지키고 있지만 씨티그룹, 모건스탠리, JP모건, 바클레이스캐피털 등은 이미 미드타운이나 뉴저지로 사무실을 옮겼다.

증권거래소에서 한 블록 떨어져 있는 미국 최대 뮤추얼펀드인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도 내년에 뉴저지 저지시티로 본사를 옮길 예정이다. 인근에 있는 딜로이트투시 금융회계 컨설팅회사 역시 조만간 맨해튼 미드타운에 있는 록펠러센터로 이전한다. 노무라증권도 미드타운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회사들이 떠난 자리는 호텔 아파트 등이 발 빠르게 채우고 있다. 지난해 뉴욕 시의 조사에 따르면 월가를 중심으로 한 다운타운의 거주 인구는 5만5000명으로 2001년에 비해 두 배로 늘었다. 또 현재 월가에 위치한 호텔은 18개로 9·11 이전에 비해 3배 늘었다.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월가를 따라 걸어가다 보면 명품 에르메스 매장을 지나 만나게 되는 하이엇 안다즈 호텔도 작년 1월에 문을 열었다.

메릴린치의 한국계 임원 K 씨는 “몇 년 전만 해도 월가에서 금융회사 한 곳이 이전한다고 하면 큰 뉴스였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며 “월가의 모습이 해가 갈수록 달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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