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리모델링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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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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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주(衣食住)는 인간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굳이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식’이 가장 먼저고 ‘주’와 ‘의’가 뒤를 잇는다고 생각한다. 국가도 도움이 필요한 국민이 배곯지 않고 거처를 제공받도록 하는 데 힘쓴다. 과거 정부 역시 보릿고개를 뒤로할 즈음부터 주택 공급에 소매를 걷어붙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주택 250만 채를, 전두환 대통령은 500만 채를, 노태우 대통령은 200만 채를 짓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있는 집을 더 좋게 가꾸려는 욕구가 내 집 장만의 희망만큼 강한 세상으로 변했다. 필요성을 절감한 주민이 리모델링 사업에 앞장선 지도 꽤 오래전부터다. 1991년 입주를 시작한 경기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의 1기 신도시 주민이 활발하게 움직인다. 특히 전용면적 60m² 미만에 사는 이들의 의지가 강하다. ‘좁고, 낡고, 힘든’ 세 가지를 어떻게든 개선하고 싶어 한다. 좁은 공간과 낡은 배관, 빈자리 없는 지상주차장이 바로 그것이다. 어디 1기 신도시만의 일이겠는가. 지은 지 15년 넘은 전국의 아파트는 해마다 늘어난다. 2009년 기준으로 15년 이상 된 아파트는 약 300만 채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아파트 고령화’ 문제는 ‘인구 노령화’만큼이나 쓰나미처럼 몰려온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터이다.

주민 편에서 계산할 때 리모델링 사업이 넘어야 할 가장 큰 걸림돌은 돈이다. 완전 철거 뒤 새로 짓는 재건축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목돈이 들어간다. 비용 부담에 크게 한숨짓는 이들은 작은 아파트 주민이다. 욕구는 가장 크지만 많은 돈을 들여 봤자 늘어나는 면적은 손바닥만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리모델링할 때 층을 높여 늘어난 집을 일반분양하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10% 늘어난 가구를 분양하면 비용이 30% 정도 줄어든다는 셈법까지 내세운다. 그렇다고 기존 법령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막무가내 식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니다. 현행 법령이 정한 용적률 증가 허용치인 30% 안에서 아파트단지 주민끼리 의논해 크기를 늘릴 집을 정하는 ‘용적률 총량제’ 아이디어에 대체로 호의적인 편이다.

이들이 보기에 정부의 움직임은 너무 굼뜨다. 정부가 리모델링 사안을 ‘강 건너 불 보듯’ 한다고 여길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국토해양부는 지난해 3월 리모델링 용역을 발주한 뒤 6개월 지나 공청회를 열겠다고 했다. 하지만 공청회는 취소됐고 용역기간만 늘어난 끝에 지난해 12월 말 ‘수직증축 불가’를 선언했다. 주민 반발이 거세지자 국토부는 1월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물러섰다. 이러니 ‘언제 관(官)이 앞장서서 민(民)의 어려움을 풀어준 적이 있느냐’는 불만까지 나온다.

정부가 미적거리는 사이 관이 주도해, 그것도 인심 후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국면이 다가오고 있다. 2012년 4월 치러지는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다. 선거 때만 되면 유권자들의 가려운 곳을 귀신처럼 찾아내는 정치권이 리모델링이라는 대어(大魚)를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역대 대통령을 들먹일 것도 없이 많은 여야 후보가 뉴타운 공약으로 재미를 본 18대 총선이 엊그제 일인 듯하다.

총선을 앞두고 리모델링이 거론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유권자의 한 표가 급한 각 정당이 내놓는 선심성 공약의 틀에 발목을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감당 못할 지경으로 치달아 부작용이 더 커질 위험도 없지 않다. 정부가 차분하면서도 적극적인 자세로 해당 주민과 머리를 맞대야 할 이유다. 어쩌면 이미 늦어버렸는지도 모르지만.

이진 경제부 차장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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