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일과 삶]경영은 트레킹…山 높으면 돌아가고 힘 부치면 쉬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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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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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현오 YD온라인 사장
주말 강원산골 찾는 길위의 구도자
“트레킹, 정상만 좇는 등산과 달라”
팀원들 목표 있으면 회사가 활기
CEO는 어떤 시합 나갈지만 고민

지난해 초 미국 네바다 주 데스밸리에 선 YD온라인 유현오 사장. 유 사장은 “목표 없이 걷다 보면 길 위에서 의미를 찾게 된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유현오 사장
지난해 초 미국 네바다 주 데스밸리에 선 YD온라인 유현오 사장. 유 사장은 “목표 없이 걷다 보면 길 위에서 의미를 찾게 된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유현오 사장
산에 오른다는 사람은 참 많다. 하지만 눈앞의 산이 높기 때문에 돌아간다고 자랑스레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유현오 YD온라인 사장이 그랬다. 산이 너무 높으면 돌아가고, 때로는 잠시 길 위에 주저앉는 것, 그게 유 사장이 생각하는 경영이라고 했다.

유 사장이 원래부터 한가하게 살아왔던 사람은 아니다. 그는 옛 유공(현 SK)에 입사해 SK텔레콤 창업 때부터 전략기획 업무를 맡으며 일찌감치 국내 최고 이동통신사의 임원이 됐다. 이후 SK커뮤니케이션즈 사장으로 일하며 ‘싸이월드’를 성공시켰고, SK텔레콤의 미국 투자를 총괄 지휘하던 SKT홀딩스아메리카 사장도 지냈다.

그러다 그는 2008년 갑자기 SK를 떠났다. SK텔레콤 창업 멤버이자 고위 임원이 1년 만에 작은 게임회사의 최고경영자(CEO)로 돌아오자 주위에선 의외라고 했다. 하지만 SK 시절 유 사장을 알고 지내던 지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유 사장이 요즘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모양”이라고 말했다.

○ 등산이 아닌 트레킹

지난 주말 서울 서초동 사옥에서 만난 유 사장은 “캘리포니아에서 느낀 게 많았다”고 말했다. 트레킹 덕분이라고 했다. 겉모습부터 달라져 있었다. 단정했던 머리는 뒷목을 덮는 장발로 변했고, 넥타이도 사라졌다. 요즘 등산 많이 다니는 것 같다고 물었더니 당장 “등산이 아니라 트레킹”이라고 수정했다.

“등산은 땀 흘려 정상에 오르는 게 목표지만 트레킹은 그냥 산 주위를 돌기도 하고, 평지를 걷기도 해요. 목표가 없는 게 목표고, 의미는 길 위에서 찾습니다.”

그가 설명한 트레킹이다. 캘리포니아에 있을 땐 6개월을 걸었지만 높은 산을 오르는 대신 국립공원을 한가로이 거닐었다. 걸으면서 만나는 나무, 풀, 꽃과 동물들에 대해서는 따로 책을 구해 읽으며 공부했다. 한국에 돌아와선 주말마다 1박 2일 여정으로 아내와 함께 강원도로 떠난다. 산골 구석구석에는 나물 캐는 사람들이나 펜션, 음식집 주인 등 단골집들이 여럿 생겼고, 온갖 산나물 이름도 거의 외우게 됐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겪은 경험 가운데 유 사장이 가장 좋아하는 건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 ‘자이언트 세쿼이아’를 본 것이다. 이 나무는 키가 80m가 넘는데 산불이 없으면 번식을 못 한다. 산불이 세쿼이아의 씨를 더운 공기로 멀리까지 보내주고, 타고 남은 재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씨의 쿠션이 되어주며, 세쿼이아 그늘 아래에서 자라는 키 작은 관목과 이끼 등을 태워 씨가 자랄 자리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는 “실리콘밸리엔 있고 한국엔 없던 게 산불 같은 위기마저 기회로 만드는 생태계”라며 “한국 기업들은 외부에서 경쟁이 오면 이를 피하기에 급급하지만 사실 경쟁은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말했다.

○ 트레킹에서 배운 경영

지금 그가 CEO로 있는 YD온라인은 온라인게임 회사다. ‘오디션’이라는 꽤 유명한 게임을 만들었는데 지난해 매출 586억 원 가운데 대부분을 이 게임 하나로 벌어들였다. 이는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다. 게임 하나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커 미래가 불안하다는 지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CEO는 공격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분기마다 그 목표를 실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렇다면 유 사장에겐 정상에 오르기 위한 등산이 더 어울리는 취미가 아닐까.

그는 “예전에 한국 기업은 참고 견뎌 정부의 사업권을 따면 10년을 먹고 살았다”며 “이게 꾹 참고 산을 올라 탁 트인 경치를 보고 즐기는 등산과 비슷한 경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엔 그렇게 10년씩 보장해 주는 사업이 없다는 게 유 사장의 생각이다. 정보기술(IT) 분야에선 더욱 그렇다고 했다.

그 대신 그는 ‘트레킹 같은 경영’을 얘기했다. 최근 성공하는 기업들은 기가 막힌 영업비밀을 잘 감춰서 성공하기보다 모두가 아는 공개된 정보를 남보다 빨리 이용해서 성공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신은 이런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팀원들 모두가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의 목표를 위해 스스로 얻은 정보로 일하면 그게 회사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며 “마치 작은 풀과 거대한 나무, 곤충과 다람쥐가 각자의 목표를 위해 살면 숲이 활기차게 발전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유 사장은 직원들의 일하는 방식도 바꿨다. YD온라인의 직원은 230명가량인데 과거에는 작은 규모 때문에 CEO가 세세한 부분까지 모든 걸 지시했다. 하지만 유 사장은 직접 지시는 최소한으로 줄였다. 그 대신 팀장 회의에서 대부분의 주요 결정을 내리도록 위임했다. 그는 “모든 걸 알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CEO가 모든 사원에게 목표를 제시하고 따라오게 하면 누구도 진심으로 따라오지 않는다”며 “경영이 자동차경주라면 CEO는 운전사도, 정비팀도 아닌 어떤 시합에 나갈지를 고민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유현오 사장은… ▼

―1960년 서울생
―1984년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1983년 SK㈜ 마케팅 부문
―1990년 SK그룹 경영기획실(대한텔레콤)
―1995년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 정보통신학 석사
―1999년 미국 미시간주립대 정보통신학 박사
―1999년 SK텔레콤 전략기획실 기업전략팀장
―2000년 SK텔레콤 인터넷 전략본부장(상무)
―2003년 SK텔레콤 경영전략실장(상무)
―2004년 SK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이사 사장
―2007년 SKT 홀딩스 아메리카 최고경영자(CEO)
―2009년 ㈜YD온라인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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