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JOB 챔피언]<4>일자리 만드는 외국인 투자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8일 03시 00분


中 쿤산, 55개국서 투자 경쟁… 구직자도 몰려 젊은 도시로

중국의 ‘작은 거인’ 쿤산
대륙의 0.01% 면적에도
전체 수출액 2.4% 담당

치열한 국제기구 유치戰
제네바 고용 3만명 증가
유럽 각국 파격조건 제시

교육 수요 몰리는 영국
런던정경대 67%가 유학생
소비 늘고 고용으로 연결


중국 쿤산 시 화차오개발구에 문을 연 신세계 이마트 내부 모습. 쿤산 시에 외국계 기업이 꾸준히 들어서면서 일자리가 넘치자 중국 각지에서 노동자가 몰려들고 있다. 이마트도 중국인 직원 320여 명을 고용했다. 쿤산=이헌진 특파원
중국 쿤산 시 화차오개발구에 문을 연 신세계 이마트 내부 모습. 쿤산 시에 외국계 기업이 꾸준히 들어서면서 일자리가 넘치자 중국 각지에서 노동자가 몰려들고 있다. 이마트도 중국인 직원 320여 명을 고용했다. 쿤산=이헌진 특파원

《“도시뿐 아니라 심지어 사람들까지 새롭습니다. 넘치는 일자리를 찾아 매일 전국에서 구직자들이 몰려오니까요.” 지난달 25일 중국 장쑤(江蘇) 성 쿤산(昆山) 시에서 만난 이 지역 토박이 장전헝(蔣貞恒·35) 씨는 이렇게 말했다. 상하이(上海)와 맞붙어 있는 지방도시 쿤산에 최근 20년 동안 줄기차게 외국계 기업이 들어서면서 일어난 현상을 요약한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낡은 건물 일색이었던 쿤산 시내의 장푸(張浦) 상업구와 가오신(高新) 구에는 도로를 따라 현대식 건물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버스터미널과 기차역 등 곳곳마다 젊은이들로 북적여 도시 전체에 활력이 넘쳤다. 중국의 다른 지역이 부러워할 정도로 쿤산에 외국자본이 물밀 듯이 들어오면서 이곳은 ‘일자리 해방구’가 되고 있다. 이는 중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유럽과 미국 등 다른 나라들도 나라 밖의 자본과 소비를 끌어들여 자국(自國)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실물경제실장은 “해외의 자본과 소비를 끌어오는 것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라며 “해외 공장이 현지인을 고용하는 것 못지않게 교육과 서비스산업으로 해외 수요를 끌어들이면서 생기는 일자리 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 중국의 공장마다 넘쳐나는 일자리


쿤산에서 350km가량 떨어진 시골 출신인 24세의 웨이펑(魏峰) 씨는 지난해 쿤산에 왔다. 전자회사에서 일하는 그는 “쿤산은 임금이 다른 곳보다 높고 일자리도 많다”며 “장쑤 성과 저장 성에서 이 소식을 모르는 젊은이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에는 전자산업 등 다양한 업종의 기업이 많아 일자리를 찾는 젊은이들이 꾸준히 몰려들고 있다.

2008년 기준 쿤산의 상주인구는 69만 명 정도. 하지만 실제 인구는 이보다 배 이상 많은 164만 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대부분이 일자리를 찾아 이곳에 온 외지인이다.

현재 쿤산에는 2008년 문을 연 한국계 할인점 신세계 이마트를 포함해 세계 55개 국가의 기업들이 5500건의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이들이 약속한 투자액이 230억 달러에 이르고 140억 달러가 이미 집행됐다. 면적은 중국 대륙 전체의 0.01%, 인구는 0.05%에 불과한 작은 도시지만 2008년 중국 전체 수출액의 2.4%를 담당한 ‘작은 거인’이다. 랴오닝(遼寧) 성 다롄(大連) 경제개발구의 한 관계자는 “쿤산이야말로 외국 자본으로 천지가 개벽한 곳”이라고 평가했다.

외국 기업들은 중국 노동력을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 역할을 한다. 쿤산 시의 개발구 2곳 중 하나인 화차오(花橋)개발구에 있는 신세계 이마트 화차오점은 320여 명을 고용하고 있다. 구쥔(顧俊) 화차오점 점장은 “직원의 60% 이상이 타 지역에서 온 노동자”라고 전했다.

대만의 유명 식품업체인 다청(大成)그룹 계열사인 타이지(泰吉)식품도 이곳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잔진허(詹金和) 공장 총경리는 “현재 60명인 직원을 2015년까지 1000명으로 늘릴 계획으로 이미 용지도 마련했다”고 말했다.

○ 일자리 늘리려 국제기구 유치 열성

스위스 제네바의 세계무역기구(WTO) 본부에서 회의를 마친 각국 대표단이 WTO 건물을 떠나고 있다. 국제 기구를 유치하면 상주 직원 수만큼 해당 지역에서 추가 고용이 생긴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스위스 제네바의 세계무역기구(WTO) 본부에서 회의를 마친 각국 대표단이 WTO 건물을 떠나고 있다. 국제 기구를 유치하면 상주 직원 수만큼 해당 지역에서 추가 고용이 생긴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경제성장이 한계에 부닥친 유럽 국가들은 국제기구 유치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스위스는 국제기구 창설 초기부터 유엔 관련 국제기구와 세계무역기구(WTO) 등을 비롯해 상주 인원이 많은 국제기구를 전략적으로 유치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국제기구 1개를 유치하는 것은 글로벌 기업 3, 4개를 끌어들이는 것과 비슷한 고용유발 효과를 내고 국가브랜드를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며 “스위스는 국제기구 유치를 통해 국내 고용 활성화와 국격(國格) 향상을 동시에 이룬 모범사례”라고 말했다.

국제기구가 유발하는 고용 효과는 상당하다. 2007년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자료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국제기구 직원 수만큼의 고용이 해당 지역에서 창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스위스 제네바에는 국제기구 직원만 약 2만 명에 이른다. 이 밖에 각국 대표부의 외교관과 직원이 4000여 명, 국제적인 비정부기구(NGO) 단체의 직원도 2500여 명이나 된다. ICC 자료를 적용해보면 국제기구 덕분에 3만 개 가까운 일자리가 제네바 시민들에게 생겨나는 셈이다. 스위스 정부에 따르면 매년 13만 명 정도의 국제기구 방문자들이 스위스 내 호텔과 각종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간접적으로 창출되는 일자리만 1만4000개에 이른다.

이에 따라 벨기에, 독일 등 다른 국가들도 국제기구를 끌어오기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유럽연합(EU) 본부 유치를 놓고 제네바와 경합을 벌였던 벨기에는 외교관 신분이 아닌 EU 소속 공무원에게도 면세혜택을 주는 파격 조건으로 결국 유치에 성공했다.

독일은 통일 후 서독 수도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본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국제기구 유치에 승부수를 던졌다. 옛 연방의회 건물을 5500만 유로(약 831억 원)를 들여 재정비해 2006년 7월 유엔에 기부했다. 2008년 말 기준으로 본에는 18개의 유엔 관련 기구가 있는데 매달 돌아가면서 국제회의와 총회를 개최해 본의 일자리 창출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 교육 수요 끊이지 않는 영국

지난달 15일 오후 영국 런던정경대(LSE) 사회과학대 강의실. ‘사회정책과 개발’ 강의를 듣는 수강생은 모두 50명이었다. 하지만 이 중 영국인은 5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유학 온 학생들이다.

인도 공무원인 아밋 탈와 씨(34)는 올해 초 부인과 네 살 난 딸이 런던 생활에 합류한 뒤 지출이 2배가량 늘었다. 매달 지불해야 하는 방값, 식료품비, 교통비, 주말 나들이 비용 등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탈와 씨는 “돈이 많이 들지만 아내와 딸이 다양한 문화와 질 좋은 교육을 경험할 수 있어서 전혀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전체 LSE 학생의 67%에 이르는 유학생들은 학비를 내는 것뿐만 아니라 런던의 소비를 늘리면서 궁극적으로 영국의 고용 창출에 기여한다. 지난해 영국 대학에 등록한 유학생은 41만5585명으로 2008년보다 6.7% 늘었다. 질 높은 교육에 대한 수요는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식지 않고 영국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런던호텔스쿨에 다니는 윤선미 씨(27·여)는 여섯 살인 조카와 함께 살고 있다. 그의 조카는 수업료로 한 달에 약 130만 원을 내면서 커네리워프역 인근의 사립학교에 다닌다. 유학생 자녀들이 몰리자 학교 측은 학급을 늘리고 반마다 영국인 교사 2명씩을 새로 채용했다. 해외에서 몰려드는 교육 수요가 영국인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특별취재팀>
▽팀장 박현진 경제부 차장
▽경제부
미국 뉴욕·몽고메리=홍수용 기자
영국 런던·브라이턴·셰필드, 독일 프랑크푸르트=박형준 기자
호주 시드니=문병기 기자
스위스 취리히·베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헤이그=이세형 기자
▽국제부
일본 도쿄=김창원 특파원
중국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 쿤산의 투자 유치 비결은?
기업 설립서 운영까지
공무원 원스톱 서비스


컨설팅회사 AT커니가 1000개 다국적기업 경영진을 대상으로 외국인직접투자(FDI) 선호국을 조사한 결과 중국은 올해를 포함해 9년째 1위로 꼽혔다. 중국에 대한 투자액은 2001년 468억8000만 달러에서 지난해 900억3000만 달러로 약 2배로 늘었다. 중국 각지에서 만들어지는 일자리도 그만큼 늘었다. 반면 한국은 같은 기간 112억8700만 달러에서 114억8400만 달러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중국이 막대한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비결은 뭘까. 값싼 인건비와 방대한 소비시장이 가장 큰 이유지만 이면에는 세계적 수준으로 훌쩍 올라선 투자 유치 서비스가 자리 잡고 있다.

쿤산 시에서 만난 한 중국 기업인은 “쿤산 공무원은 특별하다”며 “설립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기업들을 위한 행정서비스가 거의 완벽하게 구축돼 있다”고 칭찬했다.

대만 타이지식품의 잔진허 총경리도 “지리적 이점만 따진다면 광저우(廣州)가 훨씬 낫지만 쿤산은 광저우에 없는 행정서비스와 치안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쿤산 시는 기업 설립과 관련한 모든 행정절차를 한 번에 해결할 뿐만 아니라 심사기간도 다른 곳보다 월등히 짧다. 이런 점이 평가받아 중국 사회과학원이 각 도시를 대상으로 실시한 창조력 종합평가에서 2006, 2007년 연속으로 1위를 차지했다.

중국 정부의 행정서비스에 대해 한국 기업인들이 감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06년 해외 조선소 용지를 물색하던 STX는 현지 공무원들이 인허가와 동시에 산 하나를 완전히 깎아내 토지를 매립해 준 다롄을 최종 선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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