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하나 개발에 20년… 아이디어 꽃피우는데는 기다림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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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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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기로 年24조원 매출…이와타 사토루 닌텐도 사장

《사람들에게 물었다. “게임 하십니까?” 열이면 아홉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했다. “바빠서….” “복잡해서….” 궁금했다. 왜 다들 게임을 관둘까. 사람들이 어린시절 가졌던 게임에 대한 열정을 되찾아주고 싶었다.

궁리 끝에 내린 결론은 이랬다. 최대한 단순하게, 기본으로 돌아가자. ‘슈퍼마리오’로 대표되는 일본 게임개발업체 닌텐도(任天堂)의 이와타 사토루(巖田聰·50) 사장의 목표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게임 인구를 늘리는 것이다. 모든 게임 콘텐츠들이 거대해지고 현란한 그래픽을 앞세울수록 그는 ‘기본’을 외쳤다.》
● 닌텐도 왕국은 하루아침에 세워지지 않았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보여주자”
수없이 실패했지만 혁신으로 일어서


● 최대한 단순하게, 기본으로 돌아가자
화려함보다 ‘오락실 추억’ 감성 호소
불황-아이폰 위협에도 한눈 안 팔아


그의 실험은 전 세계 사람들을 파고들었다. 올해 4월 닌텐도가 발표한 연결 매출액은 1조8386억 엔(약 23조9021억 원). 곧 2조 엔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미국 경제 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올해 10월 닌텐도를 ‘세계 최고의 기업’ 1위로 꼽았다. 게임기 파는 회사가 구글(2위)이나 애플(3위) 같은 정보기술(IT)계의 총아로 불리는 기업보다 앞에 섰다.

1889년 ‘화투’를 만들며 시작한 닌텐도는 1980년대 들어 오락실용 ‘동키콩’과 가정용 ‘패밀리’, 휴대용 ‘게임보이’ 등을 내놓으며 게임시장에서 명성을 얻었다. 2002년 이와타 사장 취임 이후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DS’(2004년), ‘닌텐도Ds Lite’(2006년), 가정용 게임기 ‘Wii’(2006년)를 잇달아 성공시켰다. 지난해 닌텐도DS의 전 세계 판매량은 3118만 대, Wii는 2595만 대를 넘었다.

갈수록 더 힘을 발휘하는 그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동아일보는 1일 일본 교토(京都) 닌텐도 본사에서 이와타 사장을 단독 인터뷰했다. 2시간가량 진행된 이날 인터뷰엔 한국닌텐도 고다 미네오(甲田峰雄·49) 사장이 동석했다.

○ 닌텐도의 저력

몇 개의 버튼이 전부인 단순한 게임기는 대중을 파고들었다. 특히 화면을 직접 만지며 게임을 진행하는 이른바 ‘감성 터치’ 전략은 여성과 중장년층을 자극했다. ‘두뇌 트레이닝’ ‘영어 삼매경’ 등은 게임에 대한 기성세대들의 인식을 바꿔놓았다.

‘온라인 강국’인 한국에서도 닌텐도의 인기는 대단하다. 2007년 1월 국내 발매된 닌텐도DS Lite의 판매량은 300만 대에 육박한다. 올해 2월에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우리는 왜 닌텐도 같은 게임기가 없냐”는, 이른바 ‘명텐도’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이와타 사장은 “한국에서 닌텐도를 잘 봐줘서 고맙다”고 말했지만 이내 ‘쓴소리’를 던졌다.

“닌텐도 120년 역사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실패한 부분들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을 뿐 우리도 수없이 넘어졌죠. 아이디어는 하루아침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하며 기다려야 얻을 수 있는 것이죠. Wii 게임기에 들어가는 얼굴 만들기 메뉴 ‘Mii’는 ‘슈퍼마리오’를 만든 닌텐도의 게임 디자이너 미야모토 시게루(宮本茂) 전무가 20년 이상 걸려 만든 것입니다.”

―닌텐도가 보여준 성공이나 혁신의 근원은 ‘기다림’이란 뜻인가요?

“물론 무조건 기다리는 건 아닙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보여주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혁신입니다.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찻잔을 들어올리며) 이 찻잔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면 형태가 달리 보이듯이 말이죠.”

○ 닌텐도의 반성

지금 닌텐도는 사실 시련기다. 2005년 이후 승승장구하던 실적이 최근 꺾였다. 닌텐도의 2010 회계연도 상반기(올해 4∼9월) 매출액은 5480억5800만 엔으로 전년 동기 대비 34%, 영업이익은 1043억6000만 엔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세계적인 경기 불황에 북미 시장에서 닌텐도DS 판매량이 감소한 것이 원인이다. ‘닌텐도의 위기’론이 불거졌다.

―닌텐도가 약해진 건가요?

“예나 지금이나 닌텐도의 성공은 ‘운’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할 일을 다 하면 성공은 하늘에서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끔은 어떤 걸 제안해도 사람들이 놀라거나 흥미롭게 생각하지 않을 때가 올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하죠.”

이와타 사장은 “닌텐도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닌텐도DS의 업그레이드 판인 ‘닌텐도DSi LL’이 나왔다. 화면을 3인치에서 4.2인치로 키웠는데 혼자서 즐기던 닌텐도 게임기를 오락실게임처럼 옆에서 사람들이 구경하며 볼 수 있게 했다. 또 ‘슈퍼마리오’로 대표되는 자사 게임에만 몰두해 외부 게임개발 업체들에 비협조적이었던 관행도 바꾸기로 했다. 이런 반성 덕분일까. 닌텐도DSi LL은 발매 이틀 만에 10만 대가 팔렸다. 이달 초 내놓은 Wii용 슈퍼마리오 게임은 발매 첫 주 93만 장이 팔리는 대기록을 세웠다.

○ 닌텐도의 미래

올해 4월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사장(당시 전무)이 닌텐도 본사를 방문한 후 삼성전자에서는 “닌텐도의 역발상과 창조경영을 본받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이에 대해 이와타 사장은 “이재용 부사장과 삼성전자는 새로운 ‘블루오션’을 빨리 발견하고 도전을 아끼지 않는다”며 “닌텐도와 닮은 점이 많다”고 말했다. 혹시나 삼성전자와의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는지 물어보자 “때가 됐을 때 밝히겠다”고 언급을 피했다.

다소 평온했던 인터뷰는 애플의 ‘아이폰’ 얘기가 나오면서 활기를 띠었다. 최근 아이폰이 전 세계를 휩쓸면서 휴대용 게임기 시장마저 위협할지 모른다는 추측이 나돌고 있다.

이와타 사장은 “아이폰과 닌텐도는 근본 자체가 다르다”며 “닌텐도는 아이폰처럼 매월 돈을 지불해야 하는 사업모델이 아니기에 차라리 아마존 e북 ‘킨들’처럼 소프트웨어 비용만 내는 형태의 사업 구조가 더 맞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휴대전화 사업 진출에 대해선 “우리는 게임기 만드는 회사인데 그 정체성이 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교토=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 “과거에 매달리지 말라”… 120돌 기념행사 안열어 ▼

“자축대신 새 게임 개발” 게임기-SW 기록도 안남겨


1200년 역사를 지닌 일본의 고도(古都)인 교토(京都)에 자리 잡은 닌텐도 본사. 최첨단 게임회사인 닌텐도가 천년고도에 있는 것은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닌텐도 본사 사옥은 글로벌 게임회사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차분하고 모던한 분위기다. 건물 외벽은 흰색 석재 타일로 덮여 있을 뿐 그 흔한 게임 캐릭터조차 그려져 있지 않다.

닌텐도는 올해 창업 120주년을 맞았지만 기념행사를 열지 않았다. 과거보다 현재를 소중하게 생각하자는 뜻에서다. 이와타 사토루 사장은 “자축에 쏟을 에너지를 새롭고 혁신적인 게임 개발에 투입하는 게 훨씬 낫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닌텐도는 지금까지 개발해 온 게임기나 소프트웨어를 회사 차원에서 보관하지 않는다. 특히 실패한 게임 소프트웨어는 남기지 않고 전부 없앤다는 것이 철칙이다. 직원들이 자칫 과거에 얽매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닌텐도 본사 사무실은 쥐죽은 듯 조용하다. 복도에서 만난 직원들은 발소리 하나도 신경을 쓰는 듯한 모습이다. ‘개성’을 강조하며 자유분방한 문화를 추구하는 일반적인 게임회사와는 다른 모습이다. 또 20, 30대 등 ‘젊은 피’가 대부분인 다른 게임업체들과 달리 닌텐도는 40, 50대 직원들이 ‘허리’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1600여 명에 이르는 본사 직원들의 평균 나이는 35세다. 도요다 겐(豊田憲) 커뮤니케이션실장은 “자칫 ‘노쇠하다’는 이미지를 줄 것 같아 최근 들어 신입사원도 많이 뽑는다”고 말했다.

얼핏 보수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닌텐도 내부를 들여다보면 혁신을 가장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슈퍼마리오’를 만든 미야모토 시게루(宮本茂) 전무가 닌텐도 게임을 혼자 다 만들 것 같지만 사실은 모든 직원을 직무와 상관없이 한 번씩 게임개발팀으로 보낸다. 게임을 개발하다 보면 본인도 모르는 잠재력이 나올 수 있다는 게 닌텐도의 설명이다. 이런 전통 덕분에 닌텐도는 ‘다이어트 게임’ ‘스케줄 관리’ ‘근육질 몸짱 만들기’ 등의 신제품을 내놓으며 게임의 영역 자체를 넓혀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욱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분위기는 회사 밖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닌텐도 오너 일가인 야마우치 히로시(山內溥) 명예회장이 사재를 털어 교토 인근 아라시야마(嵐山)에 세운 ‘시구레덴(時雨殿)’이 대표적인 사례다. 시구레덴은 게임기를 이용해 일본 전통문학인 하쿠닌잇슈를 체험하고 익히는 일종의 테마파크. 우리나라로 치면 게임기를 들고 불국사를 체험하는 셈이다. 시구레덴은 미야모토 전무가 기획했다.

교토=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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