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장터에 ‘싸구려 장사꾼’ 판친다

  • 입력 2008년 2월 14일 15시 34분


휴대전화 표시 가격(위)-휴대전화 실제 가격(아래).
휴대전화 표시 가격(위)-휴대전화 실제 가격(아래).
회사원 박 모 씨(40)는 최근 한 인터넷 쇼핑에서 휴대전화를 구입하려다 포기했다.

박씨는 먼저 자신이 원하는 모델명을 입력하고 검색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시중보다 엄청나게 싼 제품들의 목록이 떴다.

박씨는 그 중 한 제품을 클릭해서 자세한 설명을 보려고 했다가 다시 전 화면으로 돌아가는 버튼을 눌렀다.

분명히 목록에 나와 있는 값은 '1000원' 이었는데 상세 설명에는 '보조금 지급 대상은 4만9000원, 보조금 미지급 시 6만9000원'이라는 전혀 다른 가격표가 붙어 있었던 것.

다른 제품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목록의 표시가격과 실제 판매가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단말기 값은 싼데 복잡한 요금제나 부가서비스를 강요해 실제 내야 하는 돈은 더 많은 제품들도 있었다.

박씨는 "적당한 물건을 찾기 위해 30여 분 간 검색을 하고 나니 해당 제품의 적정 가격이 얼마인지 혼돈스러워졌다"고 말했다.

●'전자상가'식 마케팅 판치는 인터넷 쇼핑

최근 오픈마켓을 중심으로 인터넷 쇼핑 업체들 사이에서 이른바 '전자상가'식 마케팅이 고개를 들고 있다.

전자상가식 마케팅이란 전자 상가 상인들이 한동안 즐겨 사용했던 판매방식.

똑같은 제품을 파는 업소가 한정된 공간에 너무 많다 보니 고객을 끌어 들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과정에서 고객을 속이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적정가격이 10만원인 휴대용 오디오 A 모델을 구입하려는 사람 B씨가 있다면 판매상 C씨는 "8만원에 팔겠다"며 제품을 소개한다.

"전자상가에서도 발품을 팔아야 물건을 싸게 산다"는 얘기를 들은 B씨는 다른 곳에서는 얼마에 파는지 열심히 돌아다닌다.

하지만 아무리 돌아다녀 봐도 A모델을 10만 원 이하에 파는 곳을 발견하지 못한 B씨는 다시 C씨를 찾아가 구입을 결정하고 돈을 지불한다.

C씨가 "이어폰은 별매이며 값은 2만원"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제품 포장이 거의 끝날 무렵.

이때 고객이 항의하려고 하면 C씨는 인상을 쓰며 협박 비슷한 말투로 구입을 강요한다.

●온라인 장터도 전자상가와 비슷한 환경

인터넷 쇼핑에서는 '험악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있지만 싸게 파는 것처럼 가장하면서 실제로는 제값 다 받거나 되레 비싸게 받는 방식은 과거 전자상가와 닮았다.

단순히 값을 다르게 표시하는 경우는 양반에 속한다.

직장인 민 모씨(36)는 최근 인터넷 쇼핑에서 아령을 한 개 구입하면서 구매수량 '10개'를 클릭했다.

헬스기구 목록에 10㎏짜리 아령 가격은 분명히 '2000원'이라고 소개가 돼 있었으나 막상 구입하려고 보니 '1㎏당 가격'이라는 설명이 있었던 것.

그래서 10㎏짜리 아령을 구입하려면 '선택' 메뉴에서 구매수량을 '10개'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민 씨는 "제품이 괜찮아 보여서 구입을 하기는 했으나 왠지 속은 것 같은 기분은 지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저렴한 가격 때문에 인터넷 쇼핑을 자주 한다는 주부 김 모 씨(38)도 "인터넷에서 물건을 볼 때 가격 표시란에 '추가 2만원'과 같은 가격 선택 메뉴를 보는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꼭 필요한 부속품 값을 따로 받거나 비슷한 제품을 여러 개 진열하면서 그 중 가장 싼 모델 한 개 값만 표시하기도 하는 등 다른 판매자들을 제치고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한 방법은 점점 지능화 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 운영 업체들은 이 같은 판매방식에 대해 이렇다할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

한 인터넷 쇼핑 업체 관계자는 "전자상가 같은 곳은 공간적 제약 때문에 속아 사는 경우가 있었다"며 "그러나 인터넷에서는 판매자 눈치를 보지 않고 클릭 한번으로 다른 제품을 선택할 수 있어 소비자를 속이는 판매자는 자연히 퇴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씨 등은 "인터넷은 이미 일상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화면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소비자가 기분이 상할 수 있다"며 "편법으로 '클릭'을 유도하는 일이 없도록 쇼핑몰 환경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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