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퍼주는 고봉밥에 막걸리 한잔…사라지는 ‘함바의 추억’

  • 입력 2005년 12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지난달 30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4단지 GS건설 재건축 현장 식당(함바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근로자들. 전문 급식업체가 운영하는 이 함바식당은 체계적인 메뉴를 제공하지만 예전 같은 공사판 특유의 낭만은 찾기 어렵다. 권주훈 기자
지난달 30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4단지 GS건설 재건축 현장 식당(함바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근로자들. 전문 급식업체가 운영하는 이 함바식당은 체계적인 메뉴를 제공하지만 예전 같은 공사판 특유의 낭만은 찾기 어렵다. 권주훈 기자
“…수당을 챙겨 넣을지라도 잊지 말거라/장마통 함바의 소주잔으로 막걸리 잔으로/뜨겁게 주고받은 노가다…”(김해화 시인의 ‘인부수첩29’)

건설현장 간이식당을 뜻하는 ‘함바식당’은 건설 근로자들에게 밥을 먹는 장소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손맛 좋은 식당 주인이 퍼주는 밥과 막걸리는 오직 몸으로 일하는 이들에게 힘든 일상을 잠시 잊게 하는 역할까지 했다.

시대가 바뀌면서 함바식당이 회사 구내식당처럼 변하고 있다.

특히 현대 대우 삼성 GS 등 대형 건설업체를 중심으로 급식업체가 공사 기간에 현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현재 수도권 건설현장의 30%는 전문 급식업체가 함바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추정이다.

○ 식단 과학화되다

지난달 30일 오전 11시 반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4단지 GS건설 재건축 현장 내 함바식당.

겉은 허름했지만 실내는 깔끔했다. 조리반원 6명은 가운에 모자까지 쓰고 있었다. 근로자들은 지급받은 카드를 인식기에 대 밥값(한 끼 3300원)을 계산했다.

“매일 메뉴가 바뀌니까 가끔은 마누라가 해 주는 밥보다 낫지.”

급식업체 상락푸드가 운영하는 이 식당에서 만난 경력 12년의 굴착기 기사 함모 씨는 제육볶음을 밥 위에 수북하게 얹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예전에 아줌마 몇 명이 함바식당을 운영할 때는 메뉴가 아줌마 마음대로였다”며 “같은 반찬이 연달아 나오면 짜증났는데 급식업체가 하면서 그런 일이 사라졌다”고 했다.

상락푸드 김병수 과장은 “전국 29개 건설현장 함바식당에 파견된 영양사들이 조사한 근로자들의 취향을 바탕으로 2주 단위로 식단을 짠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밥을 먹어 보니 맛은 있지만 짠 편이었다.

이현경 영양사는 “근로자들이 땀을 많이 흘려 겨울에도 염도를 조금 높인다”며 “식판 옆에는 아예 소금과 양념장 고추장을 담은 통을 늘 놓아둔다”고 말했다.

○ 낭만은 사라져

이 식당에는 밥과 반찬은 많지만 소주나 막걸리는 없다.

작업 때 안전을 고려해 퇴근 전 음주는 금지돼 있다. 음주로 적발되면 즉시 현장에서 퇴출된다.

이재열 안전반장은 “반주(飯酒)를 즐겼던 일부 고참은 종종 현장 밖 식당에서 음주를 ‘시도’했지만 올해 초부터 음주측정기를 구입해 현장 출입구에서 불심검문을 시작한 이후로는 더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찬을 담당하는 경력 20년의 윤선현 씨는 “시끄럽지 않아 좋지만 사람 사는 냄새는 덜 난다”며 “이전에는 십장들이 밥 먹으면서 부하 근로자들에게 노래도 시키고 했는데 지금은 조용히 밥만 먹는다”고 했다. 실제로 이날 근로자 70여 명은 대부분 7∼10분 만에 점심식사를 마쳤다.

배선 담당 최모 씨는 “술도 못 마시게 하니 다들 빨리 밥 먹고 남은 시간에 낮잠 자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다 보니 현장 근로자들은 대부분 작업이 없는 일요일에 몰아서 폭음을 한다.

윤 씨는 “많은 근로자가 월요일에 해장국을 찾아 주로 콩나물국이나 북엇국을 준비한다”고 말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