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위기에 놀란 재계 ‘우군 확보 경영’으로 선회

  • 입력 2005년 11월 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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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삼성에서 배우자.” 최근 재계에선 이런저런 악재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삼성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경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등 경영과 엘리트주의’로 대표되는 삼성 따라 배우기가 아니라 기업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기댈 만한 ‘우군(友軍)’을 미리부터 만들어 놓자는 것이다. 재계에 확산되는 ‘우군 확보 경영’은 거래처와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중시할 뿐 아니라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는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으로 부상하고 있다.》

○ ‘거래업체의 원성을 듣지 말라’

LG그룹 임직원들은 요즘 “평소에 외부에 겸손하도록 노력하자”는 얘기를 최고 경영진에게서 자주 듣는다.

그룹 지주회사인 ㈜LG 관계자는 “LG는 일찌감치 기업지배구조를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했기 때문에 삼성과 달리 지배구조 개선 압박에서는 자유롭다”면서 “하지만 글로벌 리딩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임직원들이 외부와의 소통을 좀 더 원활하게 하고 현장에서 매사에 겸허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게 경영층의 주문 사항”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과 하청 거래관계가 많은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은 협력업체에 대한 배려에 부쩍 신경을 쓰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협력업체 발전을 위해 매년 1조5000억 원의 자금 지원을 약속하고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면서 “그룹 고위층은 돈도 돈이지만 현대차와 거래한 업체들이 나중에 억울하다면서 울분을 터뜨리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수시로 당부한다”고 밝혔다.

철강업종 특성상 국내에선 거의 경쟁자가 없을 정도인 포스코는 협력업체와의 상생경영을 강도 높게 실천하고 있다.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최근 “앞으로 3년 동안 협력업체의 임금인상률을 포스코 임금인상률보다 5%포인트 더 높일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와 거래하는 협력업체가 원가 절감이나 품질 향상에 기여하면 해당 몫을 협력업체에 다시 나눠 주는 ‘베네피트 셰어링(이익공유)’ 제도가 정착되고 있는 것은 경영진의 실천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한다.

거래업체를 쥐어짜서 거두는 이익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우호적인 비즈니스 관계도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신뢰 쌓아야

우군 확보 경영 움직임은 금융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최근 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더디게 가는 한이 있더라도 거래업체를 서운하게 하는 일은 절대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박 회장은 “우리와 비즈니스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모두 잠재적인 우군”이라며 “이들이 어느 순간 적으로 돌아서면 1등이 된다고 하더라도 오래 유지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SK글로벌 사태에 이어 소버린자산운용의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M&A) 시도로 기업지배구조를 위협받기도 한 SK그룹은 최근 ‘행복경영’을 경영 이념으로 삼고 있다.

주주는 물론 고객, 회사 임직원, 나아가 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 기업 가치를 높이는 지름길이며 이를 위해 모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중견기업 임원은 “어려움에 처한 삼성 주변에 우군이 별로 없다는 현실에서 다른 기업들이 공존과 상생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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