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간 협력경영]큰 바퀴를 돌리는 힘은 작은 바퀴에서 나온다

  • 입력 2005년 10월 27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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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이 강해야 대기업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 말을 중소기업 경영자가 하였다면, 정부나 대기업이 그간 상대적으로 불리한 대우를 받았던 중소기업에 대하여 정책적 지원을 확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쯤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기업의 경영자가 자사(自社)의 성장이 수많은 협력업체의 도움과 희생에 기인하였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앞으로 동반성장을 위한 실질적인 협력경영을 강조한 것이라면 그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 왜냐하면 대기업들의 부품 생산을 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높은 불신(不信)의 벽이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불공정한 하도급 관행의 주요 원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지나간 이야기이지만 어느 대기업 총수는 자기 기업이 모든 분야에서 중소기업보다 잘할 수 있으니까, 협력회사의 노사분규로 생산에 차질이 생긴다면 자체적으로 부품을 생산하거나 해외에서 조달하겠다고 공언(空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경제발전 공헌도가 높아지면서 중소기업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제고되었고, 공정거래 여건이 조성되면서 대기업과의 협력 기회도 증가하였다. 특히 기술혁신이 가속화되면서 기술수명주기도 제품수명 주기도 짧아져, 대기업에서만 모든 기술과 제품을 개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기업 경영자들의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중요한 발전이자 다행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기술과 경영능력 및 기타 경영자원을 공유하는 협력관계를 유지하게 되면 기존 제품의 품질향상은 물론 신제품 개발도 촉진할 수 있으며 아울러 생산원가 절감으로 가격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다. 이처럼 차별화 전략과 원가 우위 전략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을 위한 협력경영은 기업 차원에서는 물론 정부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할 핵심적인 정책과제라 하겠다.

그러나 대-중소기업간 상생(相生)을 위한 협력경영에 대하여 관련 기업이나 정부의 인식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정부에서는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보는 반면 관련기업에서는 실속 없는 지원정책으로 과대포장되었다고 비판하면서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투자와 지원활동에 대한 세제상 혜택을 확대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상반된 시각을 보면 대-중소기업 간 상생 협력을 위한 정부의 정책도 한정된 자원으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시행정적 정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과 함께 애로사항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대기업의 공약(公約)도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누그러뜨리려는 일과성 행사가 아니길 바란다. 참으로 상생을 위한 협력경영을 하려면, 새로운 가치창출을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대등한 관계에서 각자가 보유하고 있는 경쟁 우위 요소를 상호 보완하고 정부는 조정자로서 때로는 지원자로서의 역할을 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이들 기업의 상호 보완적 경영활동이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오늘날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국제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을 위한 협력관계 유지는 필수불가결하며, 지속적인 협력관계의 유지를 위해서는 각자가 부단한 자기혁신을 모색하여야 한다.

작지만 세계 일류의 기업과 크면서도 유연성 있는 대기업이 제휴하였을 때에 발휘되는 협력의 힘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반대로 기회주의적인 행동으로 서로 간에 불신이 쌓인다면 상생이 아니라 상극(相剋)의 상황이 벌어져 유혈경쟁만 벌어질 것이고 승패는 없이 모두 공멸할 것이다.

그러면 어떤 유형의 중소기업을 육성하여야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높이면서 대기업의 국제경쟁력도 보강시켜 줄 수 있을 것인가?

최근 들어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이 약화된 것은 부품소재산업이 동반되지 않은 조립·가공 위주의 산업만 발달하여, 국내 생산 및 고용증대에 별로 기여를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됨에 따라 소비가 위축되고 사회적 불만과 불안정성이 증대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조정 역할도 미흡하여 경제의 양극화 현상이 고착되어 온 것이다. 사실 중소기업이 사업체 수나 고용 면에서는 물론 생산액이나 부가가치 창출 면에서도 대기업보다 우리 경제발전에 훨씬 큰 공헌을 하고 있다. 그런데 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가? 자금과 인력이 대기업에 편중되었기 때문이다. 대기업 중 일부는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반면 대다수의 중소기업은 자금난과 판매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이와 같은 경제의 양극화 현상은 상극의 길로 대립과 충돌만을 야기시킬 뿐이며 종국에는 대기업의 경쟁력도 약화시키게 된다. 상극의 악순환을 막고 상생의 협력 기반을 구축하려면 정부는 물론 대기업도 이제 적극나서야 할 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의 협력관계를 맺으려면, 중소기업이 기술혁신 능력과 경영관리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자금과 기술을 지원해 주어야 한다. 내부 자원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자발적으로 혁신역량을 배양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다수의 일반 중소기업은 기존 기업간의 과도한 경쟁과 신규사업자의 난립으로 수익성이 극도로 악화되었고, 국내 중소기업을 대체할 수 있는 외국기업 때문에 불리한 하도급 관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진정한 동반자가 되려면 독창적인 기술력을 가진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을 중점적으로 지원하고 육성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에 의한 효과적인 지원정책을 마련하고, 대기업 역시 적극적으로 지원활동에 참여토록 하여야 한다.

상생을 위한 협력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대기업은 대부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이며, 정부에서도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을 위해 다각적인 지원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제도와 계획이 수립되었더라도 제대로 실행되지 않으면 효과를 낼 수 없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모두 상생을 위한 협력관계를 맺음으로써 보다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믿어야 협력관계는 지속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 경영자의 의식변화와 상생 협력의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또한 중소기업 스스로 부단한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야만 대기업과 상생 협력할 수 있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김병순

-서울대 경영학박사

-단국대 경상대학 교수

-산업정책연구원 중소기업 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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