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좋아야 이름값 한다… 새차 작명 들여다보기

  • 입력 2005년 9월 12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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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체’는 기아자동차가 12일 공개하는 중형 세단의 이름이다.

기아차가 옵티마 후속 세단의 이름을 ‘로체’로 정하기까지는 꼬박 1년이 걸렸다. 이름 짓는 데 쓴 비용만도 1억 원이 넘는다.

지난해 6월부터 작명(作名) 작업에 들어가 로체, 콩코드 등 5개 이름을 놓고 광범위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로체’와 접전을 벌였던 ‘콩코드’는 인지도가 높지만 이미 차량에 사용된 이름이어서 5년 만에 내놓는 신차 이미지로 부적합했다. 세계 최초의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가 2003년 운항을 중단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로체는 티베트어로 히말라야산맥 로체봉(峯)에서 따왔다. ‘한계를 넘어 더 큰 성공과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을 위한 차’라는 의미라고 기아차 측은 설명한다.

자동차업체들은 이처럼 자동차 스타일과 외관 못지않게 작명에도 관심을 쏟는다. 이름이 주는 이미지가 자동차 판매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 때문이다.

○ 차 이름에 한계는 없다

쌍용자동차가 올해 6월 선보인 레저용 차량 ‘카이런’은 무한대를 뜻하는 수학용어 카이(Kai)와 러너(Runner)의 합성어.

쌍용차는 2500개 이름 중에서 5단계를 거쳐 최종 후보작 3개를 골랐다.

통상 1000∼1500개 후보군에서 출발하는 데 비해 심혈을 기울인 것이다.

작명 기간은 5개월로 기존에 비해 두 배 가까이 걸렸다.

쌍용차 영업기획팀 김치헌 씨는 “카이런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뿐 아니라 세단도 경쟁대상으로 삼는다는 마케팅 전략을 고려해 지은 이름”이라며 “수학용어와 영어를 합성해 영역을 넘나든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언어에도 국경이 없다.

쌍용차 렉스턴은 ‘왕가’ ‘국왕’을 뜻하는 라틴어 ‘렉스(REX)’와 ‘품격’ ‘기풍’을 뜻하는 영어 톤(tone)의 합성어다. 단종된 ‘이스타나’는 말레이시아어로 ‘궁전’을 의미한다.

기아차 오피러스의 미국 수출명인 ‘아만티’는 스페인어 ‘아망테(연인)’를 변형한 것이다.

○ 한번 썼던 이름도 안 버린다

기존 이름을 다시 살려 쓰는 ‘복고 마케팅’도 인기다.

기아차는 2000년 단종된 ‘프라이드’ 이름을 다시 쓰고 있으며, 지난해 8월 선보인 SUV에도 단종 차종인 ‘스포티지’ 이름을 붙였다.

현대차도 그랜저XG 후속 모델로 ‘그랜저’를 사용하고 있으며 베르나 후속 모델에도 이 이름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GM대우차도 마티즈 후속 경차를 마티즈로 결정했다.

현대차 국내상품팀 조성균 과장은 이에 대해 “기존 인지도를 활용해 ‘후광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데다 새 차 이름을 알리는 마케팅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업체들은 과거에 사용했거나 현재 사용 중인 이름 외에 앞으로 사용할 이름까지 상표 등록을 하는 등 이름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

현대차는 국내 1600여 개와 해외 75개 이름을, GM대우차는 국내 600여 개와 해외 1000여 개 이름을 각각 상표로 등록했다.

기아차도 60여 개 이름을 상표로 등록했다.

기아차 국내상품팀 정선교 차장은 “차 이름 하나를 소비자에게 기억시키는 데 연간 100억 원가량의 마케팅 비용이 든다”며 “판매가 저조하면 이름 탓을 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 작명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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