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구조조정본부장의 세계]희생 마다않는 실세들

  • 입력 2005년 8월 11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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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X파일’ 수사와 관련해 9일 검찰에 소환된 이학수(李鶴洙)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부회장)은 그룹 안에서 ‘넘버2’로 불린다. 2002년 대선 과정에서 정치권에 불법 선거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지난해 2월 검찰에 소환된 데 이어 1년 반 만에 다시 검찰에 출두했다. 검찰에서 경제인 수사를 할 때면 으레 등장하는 대기업 인사 가운데는 이른바 ‘구조조정본부장’이 많다. 그들은 그룹 총수를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그림자’ 역할을 하면서 막강한 ‘파워’를 행사한다. 실력이 뛰어나고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다. 하지만 정치권력과 대기업의 ‘음습한 거래’가 적지 않았던 한국적 현실에서는 ‘항상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어려운 위치이기도 하다.》

○ 구조조정본부장의 파워

현 정부 출범 이후 주요 그룹들이 구조조정본부를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했다. 하지만 삼성만은 예외다. 이 부회장이 이끄는 구조조정본부는 삼성그룹의 ‘핵(核)’이다.

그룹 계열사의 자금줄을 좌지우지하는 재무팀과 100여 명의 변호사 출신을 거느리는 법무팀, 그룹의 ‘큰 그림’을 주관하는 기획팀이 산하에 있다. 계열사 임직원의 비리를 파헤치는 감사팀 및 홍보팀도 속해 있다.

이 부회장은 계열사 사장단 정례회의인 ‘수요회’를 주도하고 이건희(李健熙) 회장을 수시로 독대해 보고한다.

지난해 대선자금 수사 때 이 회장과 구본무(具本茂) LG그룹 회장, 정몽구(鄭夢九)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 김승연(金升淵) 한화그룹 회장이 모두 무혐의 처분된 것도 ‘알아서 총대를 멘’ 그룹 구조조정본부장 또는 비슷한 역할을 하는 임원의 ‘희생’과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 총수를 위해 ‘옥살이’도 감수

김창근(金昌根) SK케미칼 부회장은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을 지냈다. 재무팀장 출신인 김 부회장은 당시 ‘손길승(孫吉丞)-최태원(崔泰源)’ 투톱 체제의 가교역할을 했다. 그는 2002년 대선 때 정치권에 대선자금을 준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고 한때 옥살이를 했다. 하지만 수사과정에서 “윗선의 지시도 없었고 아랫사람들은 모두 내가 시켜서 한 일”이라며 독자책임론을 주장해 검찰을 곤혹스럽게 했다는 후문이다.

대한생명 인수과정에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혐의와 정·관계 로비 의혹을 수사 받은 김연배(金然培·한화증권 부회장) 전 한화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투옥 중이다. 그룹 안팎에서 “회장님을 대신해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얘기가 많다.

현대·기아차에서는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시절부터 정몽구 회장의 ‘오른팔’로 통했던 김동진(金東晉) 현대차 부회장이 기획총괄본부를 이끌고 있다. 그도 100억 원의 불법 대선자금을 한나라당에 건넨 혐의로 지난해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형을 선고받았다.

2003년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한 LG그룹에선 ㈜LG의 강유식(姜庾植) 부회장이 구본무 회장과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 빌딩 30층을 함께 쓰고 있다. 강 부회장도 지난해 대선자금 수사 때 책임을 지고 검찰조사를 받았다. ○ 총수의 그림자 역할…명암(明暗) 혼재

구조조정본부장은 그룹 총수의 핵심 측근으로 ‘사내(社內) 회장’으로까지 불리기도 한다. 총수의 절대적 신임을 받기 때문에 그룹 내 위상도 막강하다. 그룹 자금줄뿐 아니라 비자금을 관리하는 경우도 있어 총수가 부담스러워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교체하기도 한다. 막대한 부를 얻기도 하지만 일정 선을 넘어서면 총수의 견제를 받는 일도 적지 않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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