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공룡’ 국민연금 주식투자 확대

  • 입력 2005년 5월 12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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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금융시장에는 공룡이 한 마리 살고 있다. 이 공룡이 보유한 자금은 140조 원에 육박한다. 660조 원 규모의 국내 상장 채권시장에서 공룡은 무려 113조 원어치를 독식하고 있다. 시장의 17%를 차지한 것. ‘공룡이 한 번 휩쓸고 가면 국고채 매물의 씨가 마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채권시장에서 공룡의 식욕은 왕성하다. 공룡은 아직까지 주식 투자에는 별 욕심이 없다. 고작 발 하나 담그는 정도의 비중인 12조3000억 원어치의 주식을 샀을 뿐이다. 그러나 이 돈은 공룡에게는 발 하나이지만 주식 시장에서는 전체 시가총액의 2.8%에 해당하는 엄청난 돈이다. 이 공룡의 이름은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의 주식투자에 대한 두 가지 우려

금융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을 더 이상 ‘큰손’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다른 큰손과 같은 반열에 놓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덩치가 크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주식 투자를 확대하는 순간 한국 증시는 새로운 성장 엔진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증권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주식 매수주문이 언제까지 얼마나 들어올지를 분석하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최근 금융권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의 주식 투자가 ‘절대 선(善)’일 수 없다”는 반론이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이 거대 자금을 바탕으로 기업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국민연금이 주식을 팔기 시작할 때 증시가 받을 충격에 대한 걱정 등이 반론의 바탕이다.

11일 LG경제연구원은 이런 문제에 대한 의미 있는 분석 보고서를 내놓았다.

LG경제연구원 이철용 부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의 주식 투자 확대로 예상되는 여러 문제점은 아직 해결할 시간이 남아 있는 만큼 미리 대비해야 혼란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언제까지 주식을 사기만 하지는 않는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국민연금의 ‘증시 퇴장 리스크’이다. 국민연금이 주식을 팔아야 하는 시점이 됐을 때 증시가 감수해야 할 충격을 말한다.

많은 전문가가 국민연금의 ‘증시 입장 프리미엄’만 생각하고 있다. 장기 자금이 주식을 사면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다.

실제로 지난달 말 주가가 약세를 보일 때 국민연금은 종합주가지수 920 선부터 꾸준히 주식을 사들이며 주가 하락을 막는 안전판 역할을 했다.

‘입장 프리미엄’은 더 커질 전망이다.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중장기 국민연금기금 운용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는 지난해 말 12조3000억 원에서 2009년 31조9000억 원으로, 2015년에는 86조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 증시의 시가총액이 450조 원 정도임을 감안하면 국민연금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영원히 주식을 사기만 할 수 없다는 점. 보험료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지는 2036년부터 국민연금은 부족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주식을 팔아야 한다.

국민연금이 수백억 원만 주식을 팔아도 증시가 휘청거리는 판에 1년에 수십조 원을 팔아치우는 사태가 생기면 증시의 혼란은 불가피하다는 것.

이 때문에 국민연금의 해외시장 투자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는 국민연금의 상당액을 해외에 투자함으로써 ‘퇴장 리스크’의 위험에서 벗어난 경험이 있다.

안방인 한국 증시에서도 외국인투자가에게 밀리는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실력을 감안하면 해외에서 ‘원정 경기’를 치러야 한다는 점이 내키지 않는 것은 사실.

이 부연구위원은 “시간이 아직 있는 만큼 해외 투자 경험을 늘리고 운용 인력을 정예화하는 교육 및 인센티브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운용처를 다양화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 한 곳에서 집중적으로 주식을 팔 때보다 여러 창구에서 나눠 시간 차이를 두고 팔 때 ‘퇴장 리스크’가 줄어든다.

거대한 국민연금의 운용을 다양한 창구로 나누기 위해서는 난립해 있는 자산운용업계의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 있는 업체를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의 경영 자율권 침해 우려

2월 14일 국민연금관리공단 기금운용본부는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요약하면 ‘현 경영권에 대해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경영진을 신뢰할 수 없는 경우나 경영권 방어를 정당화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경영권에 반대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경영진을 신뢰할 수 없는 경우와 경영권 방어를 정당화할 수 없는 경우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냐는 의문이 남는다.

결국 이 판단을 ‘사람’이 해야 한다면 그 사람은 국민연금 기금운용 실무자일 가능성이 높다. 국민연금이 어떤 형태로건 기업 경영권에 간섭할 수 있다는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또 압력 단체나 시민 단체 등 이해 관계자의 영향력 행사 시도에 대한 방비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2월 9일 발표한 캐나다 국민연금의 가이드라인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캐나다 국민연금은 경영권 방어를 위한 ‘포이즌 필’(신주 발행으로 경영권을 방어하는 적대적 인수합병 대처 전략)에는 찬성, 적대적 인수합병을 막기 위해 회사 핵심 자산을 팔아버리는 ‘왕관의 보석’ 전략에는 반대 등 경영권 분쟁 관련 7가지 기준에 대해 찬성 또는 반대가 분명히 나와 있다.

한화증권 최현재 연구원은 “어떤 경우에 국민연금이 경영권에 개입할 수 있는지부터 분명히 해야 국민연금의 주식 투자 확대가 바람직한지에 대한 논의가 진전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과 캐나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 비교
종목국민연금 지분대주주 지분
삼성전자3.1916.05
한국전력3.4953.96
포스코3.543.21
SK텔레콤2.9424.02
국민은행2.634.26
LG필립스LCD0.7789.14
현대자동차4.4525.12
KT3.743.74
LG전자3.6136.08
LG카드0.0026.00
자료:LG경제연구원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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