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채권추심원 “빚 독촉 저승사자는 옛말이죠”

  • 입력 2005년 5월 11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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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 채권관리팀에서 채권추심 업무를 맡고 있는 강성일 씨가 채무자와 상담하고 있다. 사진 제공 하나은행
하나은행 채권관리팀에서 채권추심 업무를 맡고 있는 강성일 씨가 채무자와 상담하고 있다. 사진 제공 하나은행
“너 나이가 얼마야? 몇 살인데 나한테 돈을 내라 마라 해.”

“스물다섯입니다.”

“아들뻘이네….”

하나은행 채권관리팀에서 채권추심(빚 독촉) 업무를 맡고 있는 강성일(姜成壹) 씨는 채무자를 만날 때마다 나이 때문에 곤욕을 치르곤 한다. 나이가 어리다며 강 씨를 무시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젊어서 좋은 점도 있다. 40대 아줌마나 50대 아저씨는 자녀와 나이가 비슷해서인지 강 씨에게 당장 빚을 갚기 어려운 상황을 잘 털어놓는다. 채무자의 현재 상태를 잘 아는 것은 업무에 도움이 된다.

○ 채권추심원이 젊어진다

현재 하나은행 채권추심 인력 120명 가운데 60%는 20대다. 2002년 말에는 30%였다.

하나은행 박승오(朴勝吳) 채권관리팀장은 “빚 독촉 업무는 궂은일이어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경험한 40대 이상 직원들이 해왔으나 청년실업 여파로 20대 지원자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강 씨는 2003년 6월 채권추심 업무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루하루가 가시밭길이었다.

반말과 욕설로 일관하는 채무자를 상대하는 방법을 몰라 “다음에 전화 드리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이도 어린 게 뭘 아느냐’는 무시도 참기 힘들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하는 자괴감이 들었어요. 부모님은 다른 일 알아보라고 하시고….”

그러나 강 씨는 전산화 작업과 채무자 사례별 대응방법 등에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화법이 늘고 부동산이나 금융 관련 지식도 많아져 해볼 만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빚 독촉은 강압적으로 해서 되는 건 아니거든요. 나이로 하는 것도 아니고요.”

○ 발전하는 빚 독촉 기법

빚 독촉 업무는 대부분 전화로 이뤄진다. 통화 내용과 시간 등을 빠짐없이 입력해야 하는 시스템도 갖춰져 있다. 컴퓨터에 익숙한 20대의 진출이 늘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종전에는 감정적으로 다투는 일도 많았으나 지금은 채무 컨설팅 위주로 바뀌고 있다. 분할 상환에 대한 설명이나 신용회복위원회 안내 등이 많아졌다.

강 씨 옆에 있던 지성민(池星旻·34) 부팀장이 한마디 거든다.

“요즘은 채권추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아진 거죠. 제가 이 일을 시작한 6년 전만 해도 채권추심원을 ‘저승사자’라고 불렀어요.”

강 씨는 대부분의 시간을 전화 거는 데 쓴다. 하루에 거는 전화는 대략 120통. 자신이 맡고 있는 채무자의 30%에 해당한다.

경기 침체 탓인지 요즘 들어 채무자들이 빚 갚을 열의가 약해졌다고 한다.

“전에는 욕을 하더라도 찾아오고 티격태격하면서 상환하려는 의지를 보였어요. 요즘은 찾아오는 사람도 별로 없고 경매한다고 해도 ‘알아서 하라’고 해요.”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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