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 帝國’ 세계 마케팅전략 흔들리나

  • 입력 2005년 5월 4일 03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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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제국 마이크로소프트(MS)가 이번에는 한국에서 ‘시장지배력 남용 혐의’라는 장벽에 부딪혔다. 미국과 유럽연합(EU)에 이어 세 번째다.

MS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잠정 결론이 최종 확정되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정보기술(IT) 업계에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한국 공정위의 판정이 선례가 돼 다른 나라에서 비슷한 제소를 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경쟁업체들이 거인 MS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다.

▽무엇이 공정거래법 위반인가=2001년 9월 다음커뮤니케이션은 MS가 윈도에 메신저를 끼워 파는 것이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며 제소했다.

이어 미국의 동영상 재생 소프트웨어 업체인 리얼네트워크스가 지난해 10월 윈도XP에 미디어플레이어를 끼워 파는 것과 서버컴퓨터용 운영체제(OS)에 미디어 서버 프로그램(영화 음악 등을 수신자에게 보내는 프로그램)을 끼워 파는 행위를 제소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사무국은 MS가 OS 시장에서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윈도에 다른 소프트웨어를 끼워 판 것은 시장지배력을 남용한 행위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유창하(柳彰河) 법무팀장은 “MS의 끼워 팔기 전략으로 2001년 11월 39.4%였던 MSN메신저의 시장점유율이 2003년 8월 60%대로 커졌으며 같은 기간 다음메신저의 점유율은 21%에서 9.6%로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리얼네트워크스 역시 1995년 세계 최초로 인터넷 동영상 재생 프로그램 ‘리얼 플레이어’를 내놓은 뒤 한때 이 분야에서 1위였으나 지금은 MS에 밀려 2위로 떨어졌다.

MS는 1998년 5월 미국에서 인터넷 익스플로러 끼워 팔기로 제소 당한 바 있으며 지난해 3월에는 EU 집행위로부터 ‘미디어 플레이어’ 끼워 팔기에 대해 벌금 4억9700만 유로(약 6100억 원)를 부과 받았다.

▽사면초가에 몰린 거인 MS=공정위 전원회의는 MS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는 사무국 판단을 그대로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 검찰의 공소장과 같은 공정위 심사보고서는 전원회의 의장인 공정위원장의 지휘를 받아 작성되기 때문. 사무국의 판단이 전원회의에서 번복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공정거래법 위반이 확정되면 MS는 네 가지 측면에서 곤경에 처하게 된다.

우선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질 소송에 맞서야 한다. 천문학적인 과징금과 손해배상액, 독점적 지위에 대한 경쟁업체들의 도전, 이미지 실추라는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리얼네트워크스는 유럽과 한국에 이어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MS를 제소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국에서 메신저가 끼워 팔기로 결론이 나면 다른 나라의 메신저 프로그램 업체들도 MS를 제소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이 결정을 근거로 경쟁업체들은 민사재판을 걸어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된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이미 서울지방법원에 10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낸 상태다.

각국 정부의 시정명령이 확대되면 MS는 메신저, 미디어 플레이어, 미디어 서버 프로그램을 따로 팔아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시정명령 어떻게 내려질까=공정위는 과연 어떤 시정조치를 내릴까.

우선 가장 강력한 시정명령은 MS가 윈도XP에서 메신저와 미디어 플레이어를 분리해서 팔도록 하는 조치다. 경쟁업체들이 원하는 방향이다. 중장기적으로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져 더 좋은 소프트웨어가 더 싼값에 나올 수 있다.

두 번째는 EU처럼 MSN메신저 및 미디어 플레이어를 제외한 윈도XP와 모든 프로그램을 갖춘 윈도XP를 소비자가 골라 살 수 있도록 강제하는 방법이다. 소비자의 선택권을 중시한 결정이지만 유럽에서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명났다.

미국에서처럼 윈도에 해당 프로그램들을 그대로 두되 윈도 초기화면에 아이콘이 뜨지 않도록 한다거나 경쟁업체들과 윈도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라는 조치도 가능하다.

허한범(許漢範) 한글과컴퓨터 이사는 “만약 공정위가 MS에 프로그램을 분리해서만 판매하도록 시정명령을 내린다면 MS는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고 MS의 압도적 영향력에 끌려 다니던 전 세계 중소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경쟁 프로그램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메신저:

인터넷상에서 실시간으로 메시지와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 메신저와 MSN 메신저, 다음커뮤니케이션의 다음 메신저, 네이트의 네이트온 등이 있다.

:미디어플레이어:

영화, 드라마 등 동영상을 재생하는 프로그램.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미디어플레이어, 그래텍의 곰플레이어, 나우콤의 아드레날린 등이 있다.

이병기 기자 eye@donga.com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IT업계 반응▼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프로그램 끼워 팔기에 대해 공정위가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는 잠정 결론을 내리자 MS 측은 한마디로 ‘부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MS 관계자는 3일 “사무국의 잠정 결론이 전원회의에서 통과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며 “조사에 최대한 협조하되 최종 결론에 심각한 문제가 있으면 정당한 방법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MS는 미디어플레이어와 메신저 프로그램의 ‘끼워 팔기’ 혐의는 제소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리얼네트워크스가 공정위에 제소한 미디어플레이어의 경우 실질적 수혜자는 한국 소프트웨어 업체라는 것. 미디어플레이어 기능을 사용하는 인터넷 서비스 업체와 소프트웨어 업체가 많은 한국에서는 윈도에서 미디어플레이어 기능이 빠지면 서비스와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마다 ‘미디어플레이어를 내려받으라’는 공지를 따로 해야 하는 등 번거로운 일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많이 사용하는 동영상 재생 소프트웨어 ‘곰플레이어’를 개발한 그래텍 관계자는 “미디어플레이어는 기반 기술에 해당돼 이를 다른 업체의 기술로 대체하면 오히려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기술개발비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MS 측은 또 “MS가 끼워 팔고 있는 메신저는 윈도 메신저이고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 것은 별도의 내려받기 과정을 거치는 ‘MSN 메신저’이기 때문에 억울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제소 당사자들은 MS의 끼워 팔기에 대해 공정위가 강력한 제재 조치를 내리는 것은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리얼네트워크스 측은 “MS가 미디어플레이어를 윈도에 끼워 팔면서 한국시장에서 리얼네트워크스의 리얼플레이어 점유율이 급격하게 떨어졌다”며 “이는 분명 운영체제(OS)의 지배력을 남용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다음커뮤니케이션 유창하(柳彰河) 법무팀장도 “윈도 메신저와 MSN 메신저는 개인회원 정보를 공유하는 동일 서비스 제품”이라며 MS 측의 주장을 일축했다.

유 팀장은 “2001년 미국 메신저 시장 1위였던 AOL이 타임워너사와 합병할 때 미 연방통신위원회가 AOL의 시장독점을 우려해 일정 기간 핵심기술의 업그레이드를 금지한 사례가 있다”면서 “시장 개선이 이뤄질 때까지 공정위의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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