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 ‘머리’가 문제다”…‘임원 경쟁력 부족’

  • 입력 2005년 2월 20일 18시 48분


코멘트
《“한국의 중견그룹이나 금융회사들이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못 찾고 있는 것은 임원의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과 한국기업에 대한 컨설팅을 모두 해본 컨설턴트들을 만나면 자주 듣는 말이다. 베인앤드컴퍼니코리아의 이성용 대표는 ‘한국을 버려라’는 저서를 통해 “한국 기업 임원들의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인사컨설팅업체인 타워스페린 박광서 사장은 “한국 기업이 외환위기 이후 부채비율, 영업이익률 등 쉽게 눈에 띄는 문제점 개선에는 치중해 왔지만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중요한 이슈인 임원 경쟁력 향상에는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전략가’와 ‘혁신가’가 없다=LG경제연구원 인사조직그룹 이춘근 상무는 한국기업 임원의 약점으로 “임원은 맡은 분야의 관리자 역할 외에 전략가와 혁신가로서의 역할이 중요한데 상당수 임원들은 이런 인식 자체가 없다”고 지적했다.

외환위기 이후 많은 기업이 자산 및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축소균형에는 도달했지만 새로운 성장사업을 못 찾고 투자를 꺼리는 것은 임원들이 전략적 사고를 통해 성장 모멘텀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

전문지식 부족도 문제로 꼽힌다. 인사컨설팅업체 왓슨와이어트의 이승철 상무는 “임원들이 컨설팅을 받을 때 해당 업무를 몰라 일선 실무자를 부르는 경우가 많다”며 “지나친 순환보직 등으로 핵심 업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임원이 많다”고 꼬집었다. 글로벌 기업에서는 핵심 업무를 가장 잘 꿰뚫고 있는 이는 임원이다.

뒷자리에 앉아 결재만 하거나 정부나 고객업체 관리 등 대외관계만 챙기는 것을 임원의 역할이라고 착각하는 임원도 적지 않다. ▽왜 능력이 떨어지나=문제의 근원은 임원 육성 시스템의 부재(不在)다.

삼성경제연구소 인사조직실 류지성 수석연구원은 “GE나 씨티그룹 등 글로벌 기업은 초급 관리자 시절부터 임원이나 최고경영자가 될 후보를 선발한 뒤 일찍부터 임원을 육성한다”며 “그러나 한국기업은 이런 시스템을 갖춘 곳이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특히 4대그룹 이하의 중견그룹이나 금융회사일수록 이런 경향이 심하다.

임원 육성시스템의 부재는 ‘T'자형 인재 부족으로 이어진다. T자형 인재란 한 분야의 전문가이면서 동시에 회사 전체의 입장에서 사고(思考)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

박광서 사장은 “한국은 지나친 순환보직으로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없다”고 평가했다. 대표적인 곳이 “임원 중에 전문가는 없고 행장후보만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시중은행. 반대로 한 분야의 전문성만 갖춘 채 총체적 사고는 부족한 임원도 많다. 정부 부처도 그리 다르지 않다.

이성용 대표는 “경영층의 의사결정권 배분이 잘못돼 있다”고 지적한다. 소수의 최고 경영층이 의사 결정권을 독점하다 보니 임원들이 전략가나 혁신가로서 사고하고 행동할 기회가 없어 수동적인 태도가 몸에 밸 수밖에 없다는 것.

이춘근 상무는 “원가우위 전략 하나만으로 고성장 시대를 살아온 최고경영자들이 임원 경쟁력의 중요성을 모르고 정실인사를 하거나 임원을 소모품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며 “경쟁이 치열해지고 고도성장이 쉽지 않은 시대일수록 임원의 경쟁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병기 기자 eye@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