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구멍 취업’ 자격증도 힘못쓴다

  • 입력 2005년 1월 10일 17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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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업종에는 회계사 자격증도 통하지 않았다.”

국내외 회계사 자격증 소지자 200여 명은 지난해 말 SK텔레콤 신입사원 채용에 응시했지만 모두 탈락했다. 이번에 지원했던 한 회계사는 “한두 명은 합격할 줄 알았는데 모조리 낙방했다”며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자격증 소지 사실을 숨기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회계사 자격증을 가진 지원자들이 주로 회계 관련 부서를 지망해 탈락률이 특히 높았다.

취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회계사나 변호사, 미국대학 경영학석사(MBA) 등 전문직 자격증 소지자들도 ‘취업 전선’에서 탈락하는 일이 적지 않다. 특히 일부 인기 업종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전문 자격증은 ‘취업 보증수표’ 아니다=한때 높은 취업을 보장했던 회계사 변호사 자격증은 요즘 공기업이나 통신업체 등 일부 인기 업종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KT는 지난해 10월 실시한 신입사원 전형에서 응시한 국내 공인회계사 98명 중 2명만 뽑았다. 또 KTF 신입사원 모집에서는 미국 회계사 자격증 소지자 43명 중 2명이 최종 합격했다.

전문직 자격증 소지자들이 낙방의 쓴잔을 마시는 장면은 다른 분야에서도 볼 수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석유공사 공채 시험에 응시한 사법시험 합격자 4명이 1차 서류전형에서 전원 낙방했다. 석유공사 인사팀 관계자는 “법학 전공자를 4명 뽑았으나 10%의 가산점을 받은 사법시험 합격자들이 모두 영어 점수가 낮아 탈락했다”고 말했다.

미국 MBA 자격증은 인기 업종 취업의 ‘보증수표’로 통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MBA 자격증 소지자 21명은 지난해 LG칼텍스정유에 지원했지만 합격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취업 선호도가 높은 기업에서 ‘해외파’들의 부진도 뚜렷해지고 있다. LG정유의 경우 해외에서 학사 이상 학위를 딴 유학파 출신 지원자가 365명이었지만 이 중 1명만이 최종 면접에 올라갔다.

LG화학 역시 외국대학 졸업생 345명 중 6명만이 취업이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했다.

▽자격증보다 업무 능력을 키워라=전문가들은 우선 일부 인기 직종의 경쟁률이 너무 높아 국가가 공인한 전문직 자격증도 통하지 않고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KTF의 지난해 신입사원 경쟁률은 160 대 1로 국내 통신업계에서 가장 높았다. 지난해 월급을 많이 받는 회사로 알려진 LG칼텍스정유의 경우 입사 경쟁률은 300 대 1이었다.

또 국가자격증이라도 취업 현장에서 요구하는 업무 능력과 무관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SK텔레콤 측은 “회계사 자격증을 소지한 지원자들은 회계 또는 자금 관련 부서에서 근무해야 하는데 이 부문의 채용인원이 너무 적었다”고 설명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장성지(張星支) 홍보팀 상무는 “전문 자격증 소지자가 인성 시험에 탈락하면 채용하지 않는 것이 요즘의 추세”라고 말했다. LG전자 채용 담당자도 “자격증 소지 때문에 가산점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며 “풍부한 경력과 조직 친화력 등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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