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라는 이유로… 거주지 확인후 취업퇴짜 잇따라

  • 입력 2004년 5월 18일 18시 53분


노숙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불합리한 지원관리제도가 노숙자의 재활을 이중으로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노숙자지원센터’의 노숙자 신상정보관리가 허술해 노숙자들에게 오히려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고, 실질적인 지원대책도 유명무실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닫혀버린 ‘탈출구’=지난달 말 서울 서대문구 ‘구세군 드롭인센터’. 노숙자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일자리도 주선해 주는 이곳에 전화가 걸려 왔다.

“거기가 뭐하는 곳이죠?”

“노숙자분들이 머물면서 직장 찾으시도록 도와드리는 곳입니다.”

이 센터에서 생활하던 양모씨(42)가 숙소 근처 사우나에 마사지 보조원으로 취직한 뒤 이력서에 적힌 집주소와 전화번호를 이상하게 생각한 업주가 확인전화를 했던 것.

이날 저녁 업주는 양씨에게 “노숙자란 사실을 숨겼으니 급여를 처음 말했던 대로 주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자존심이 상한 양씨는 일을 그만두고 전화를 받은 센터 직원을 찾아와 한바탕 화풀이를 한 뒤 짐을 꾸려 퇴소했다.

서울 서대문구 오뚝이쉼터 충정로 사랑방에서 지내던 서모씨(37) 역시 지난달 치킨가게 배달부로 고용됐다가 주소지 확인전화를 해본 업주로부터 즉시 해고당했다.

쉼터 관계자는 “다른 하자 없이 노숙자였다는 이유만으로 일용직도 얻지 못하는 현실”이라며 “이런 일을 여러 번 겪고 나서는 누구를 찾는 전화가 올 경우 아예 하숙집이라고 말해준다”고 털어놨다.

문제는 노숙자들이 대부분 임시직으로 고용되기 때문에 부당해고에 대한 법적 대응이 어렵다는 것.

한 지원센터의 취업담당 김도진 총무는 “용케 정규직으로 채용되더라도 대개 소규모 사업장이다 보니 근로기준법 적용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 번 노숙자는 영원한 노숙자’=노숙자 개인정보가 유출될 가능성도 상존하고 있다.

서울시 위탁을 받은 민간단체 ‘노숙인 다시 서기 지원센터’가 운영하는 ‘입·퇴소 관리시스템’에는 노숙자들의 학력과 병력 가족사항 주량 등 20여개 항목이 기록돼 있다. 특히 이미 몇 년 전 이곳을 떠나 가정을 꾸리고 사는 사람들의 기록까지 남아 있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각 지역 지원센터와 상담소, 구청과 시청, 병원 직원이면 누구나 간단한 등록절차를 거쳐 열람할 수 있다. 정보보호체계가 허술하다는 실무자들의 지적이 계속돼 최근 방어벽을 구축했지만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

구세군 드롭인센터의 김재곤 간사는 “노숙자가 센터에서 퇴소한 뒤 사업을 위해 대출을 받으려고 해도 데이터베이스의 자료를 확인한 은행측이 불가 판정을 내리는 일이 적지 않다”며 “전과기록보다 더 무섭다”고 지적했다.

▽실속 없는 행정지원=서울시는 13명으로 구성됐던 노숙자대책반을 지난해 4명 규모로 줄이면서 구체적 실무는 일선 쉼터 등에 맡기고 예산 업무만 처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노숙자들의 취업에 관한 통계는 물론이고 서울시 차원의 실질적 지원 대책도 전혀 없는 실정.

서울시 복지여성국 신종한 노숙자대책팀장은 “노숙자들을 위해 특별한 취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는 않다”며 “노숙자들을 일일이 돌봐줄 수 없는 만큼 본인의 재활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남기철(南基澈) 교수는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노숙자에 대한 편견 때문에 취업이 원천봉쇄되는 것은 비극적 현실”이라며 “노숙자 개인정보도 인권보호 차원에서 관리개선 방안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손택균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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