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정위의 빗나간 시장개혁안

  • 입력 2003년 10월 30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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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어제 발표한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지배구조가 좋은 기업과 나쁜 기업을 가르는 잣대부터 잘못됐다. 정책의 일관성을 헌신짝처럼 버려 정부의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린다. 특정 기업을 규제에 묶어 두려는 작위적 의도마저 느끼게 한다.

우선 기업의 지배구조를 평가하는 기준이라고 내세운 ‘소유·지배 괴리도’와 ‘의결권 승수’는 현실과 부합하는 잣대가 아니다. 공정위 기준에 따르면 삼성은 지배구조가 나쁜 기업에 속하지만 국제적 평가는 다르다. 영국의 금융전문 월간지 ‘유로머니’는 지난달 한국에서 지배구조가 가장 우수한 기업으로 삼성의 간판 기업인 삼성전자를 꼽았다. 크레디리요네증권도 4월 지배구조가 우수한 한국기업으로 KT, KT&G, 삼성전자 등을 들었다.

공정위는 괴리도가 클수록 수익성이 낮다고 주장하지만 삼성전자는 한국기업 가운데 가장 많은 순익을 내고 있다. 반대로 공정위 기준대로라면 지배구조가 우수해 출자총액규제에서 곧 졸업할 수 있는 어느 그룹은 과거 거액의 비자금으로 물의를 빚었고, 또 다른 한 그룹은 경영난을 겪고 있다.

부채비율 100% 미만인 기업에 대해서도 출자총액규제를 하겠다는 공정위의 이번 방침은 정책 뒤집기의 극치다. 부채비율을 100% 미만으로 낮추면 출자총액규제에서 졸업시켜 주는 제도를 도입한 것이 불과 1년 반 전이다. 정책에 맞춰 열심히 부채비율을 낮춰 온 기업들이 정부의 이런 표변에 어떤 속 반응을 보일까. 정책을 이처럼 쉽게 뒤집는 정부를 어떤 투자자가 신뢰할까. ‘3년 뒤 견제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면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겠다’는 약속인들 믿겠는가.

지배구조가 좋은지 나쁜지를 평가하는 일은 정부가 아닌 시장의 몫이다. 정부가 출자를 직접 규제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 소주주와 시장이 대주주의 전횡을 견제하기 쉽도록 제도를 개선하되 출자총액규제는 없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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