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근무제 논의 급물살]勞使政 긴급좌담

  • 입력 2003년 7월 28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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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일 근무제(근로시간 단축)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노-사-정이 합의하지 않으면 여야가 8월 임시국회에서 입법을 강행하겠다는 뜻을 밝힌 가운데 노동계와 경영계는 각각 단일안을 마련해 다음달 8일 협상을 재개하기로 했다. 그러나 2년여의 노사정위원회 협상도 모자라 올 4, 5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주재로 재협상을 하고도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했던 노-사-정 대표들이 불과 1주일 만에 대타협을 이뤄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본보는 25일 김성태(金聖泰) 한국노총 사무총장, 이재웅(李載雄) 민주노총 사무총장, 조남홍(趙南弘)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 부회장, 박길상(朴吉祥) 노동부 차관을 초청해 긴급 좌담회를 가졌다.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를 대표해 국회 환노위 협상에 참여했던 이들은 재논의에서도 각계를 대표할 것이 유력하다.》

● 근로시간 단축 목표

참석자들은 논의의 출발점, 즉 현재 주44시간인 법정근로시간을 왜 40시간으로 줄여야 하는지부터 의견이 달랐다.

정부가 지난해 10월 국회에 제출한 입법안의 제안이유서에는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과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라고 돼 있다. 그러나 노동계와 경영계는 이 두 가지 목표 중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만을 상대적으로 강조해 시각차를 여실히 드러냈다.

한국노총 김성태 사무총장은 1998년 2월 6일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과 2000년 10월 23일 근로시간 단축에 관한 노사정 기본합의를 거론했다.

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 등을 실시하는 대신 △법정 및 실근로시간을 줄이고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되 △임금수준은 저하되지 않도록 한다고 합의한 만큼 이제는 근로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

반면 조남홍 부회장은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춰 “노동계가 근로시간 단축 논의를 임금인상의 기회로 삼으려 한다”며 “실근로시간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법정근로시간만 줄이면 인건비 부담이 커져 기업활동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정부 입법안에 대한 평가

노동계와 경영계의 주장을 절충한 정부안에 대해 노동계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두 노총간에도 차이가 있었다.

민주노총 이재웅 사무총장은 정부안이 생리휴가를 무급화하고 상시근로자 20인 미만 사업장의 실시 시기를 2010년까지 미룬 것은 여성 및 중소 영세사업장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정부안을 사문화(死文化)하고 원점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노총 김 사무총장은 근로시간 단축 논의에서 임금보전만 약속된다면 국제노동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휴가 휴일 등 기타 근로조건 조정은 어느 정도 양보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조 부회장은 “경영계도 정부안이 문제가 많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경영계 단일안을 만들어 국회 환경노동위에 내겠다”고 말해 재계가 정부안을 수용하는 것으로 믿었던 참석자들을 당혹케 했다. 그는 정부안에 대해 ‘최악은 겨우 면한 차악(次惡)’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박길상 노동부 차관은 “정부 입법안은 국제기준에 맞춰 법정근로시간을 줄여 실근로시간 단축을 유도하고 휴가와 휴일을 조정한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라며 “노사 대표가 일방적으로 정부안을 불합리하다고 주장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임금보전 어디까지

참석자들은 주제가 임금보전 문제에 이르자 목소리를 높였다. 그중에서도 연월차휴가 조정에 따른 임금 감소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이견이 가장 큰 대목이었다.

박 차관이 “재논의에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이라고 얘기를 꺼내자마자 조 부회장과 두 사무총장이 격돌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20년 근속 근로자에게는 연간 41일의 연월차휴가(월차 12일, 개근연차 10일, 계속근로 2년째부터 매년 1일 추가)가 발생한다. 그런데 월차를 없애고 연차는 15∼25일로 묶기로 한 정부안에 따르면 20년 근속 근로자의 연월차 휴가는 17일이 줄어든다. 이 차이를 임금으로 계속 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냐.”(조 부회장)

“그렇다. 연월차수당 감소분을 임금으로 보전해야 한다.”(김 사무총장)

“기업 입장에서 휴가는 곧 비용이다. 17일분을 계속 달라고 하면 협상에 나설 이유가 없다. 이럴 바에야 뭐 하러 법을 바꾸나.”(조 부회장)

“정부와 경영계가 항상 강조하는 국제노동기구(ILO)는 임금을 삭감하지 않고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연월차수당을 받지 못하면 임금이 깎이는 것이다.”(이 사무총장)

“경영계도 법정근로시간 4시간 단축에 관한 임금을 보전하고 이왕 발생한 연월차수당에 대해서는 퇴직금 산정 때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나머지는 재논의 때 해결책을 찾자.”(박 차관)

● 실시 시기

임금보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타협 가능성이 엿보였다. 정부안은 업종과 규모에 따라 2010년까지 단계적으로 실시한다는 것. 물론 노사가 합의하면 법안에 정한 시한보다 앞당길 수도 있다.

참석자들은 중소 영세사업장 등에 주5일 근무의 혜택이 하루빨리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 사무총장은 “정부가 중소기업을 지원한다는 전제 아래 2005년까지는 전 사업장에서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부회장도 “법에서 경직되게 시기를 정할 것이 아니라 시간은 넉넉하게 주되 빨리 실시할 수 있도록 유인책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차관은 “법이 정해 놓은 일정은 중소기업의 부담을 감안해 모든 사업장에서 동시에 실시하기는 어렵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며 “중소기업에 대한 인건비 지원 등 인센티브를 줘 시기를 앞당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사무총장은 “전체 임금근로자의 56%가 일하는 상시근로자 20인 미만 사업장의 실시 시기를 2010년까지로 미루면 엄청난 사회적 위화감이 조성될 것”이라며 “주5일 근무제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동시에 실시하는 것이 좋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세계 모든 나라가 전 사업장에서 동시에 법정근로시간을 단축했다’는 이 사무총장의 발언에 대해 조 부회장은 “이들 나라는 당시 실근로시간이 주당 40시간 미만이었다. 우리와는 사정이 다르다”며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 전망

참석자들은 국민의 여망인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서는 재논의의 장(場)이 노사정위원회가 됐든, 국회 환노위가 됐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비공식적인 논의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도 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정치권이 8월 15일로 시한을 정한 데 대해 반감을 표시했다.

“시한을 정하는 것은 교섭 당사자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이다. 2년3개월간의 노사정위 논의에서도 해결하지 못했는데 며칠 내로 해결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문제다.”(김 사무총장)

“국회가 시한을 정하는 것은 형식적인 절차를 밟고 정부안을 강행하겠다는 의도다. 서두르면 ‘부작용’이 있을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이 사무총장)

세부 내용에 대한 견해차도 적지 않았다.

‘임금보전만 확실하게 약속한다면 노동계가 대대적인 생산성 향상 운동을 벌이겠다’는 김 사무총장의 발언에 대해 조 부회장은 “임금보전은 ‘현금’인 데 반해 생산성 향상은 ‘약속어음’이다”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 차관은 “넘어야 할 난제가 적지 않지만 남은 기간 노사정이 합리적인 합의안을 이끌어 내 국민에게 큰 선물을 하자”고 노동계와 경영계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정리=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참석자 프로필▼

■박길상 노동부 차관

△노동부 노사정책국장

△〃 근로기준국장

△〃 고용정책실장

△대통령비서실 노사관계비서관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

■조남홍 경총 부회장

△상공부(현 산업자원부) 공보관, 이사관

△한국무역협회 전무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위원

△국제노동기구(ILO) 이사(현)

△노사정위원회 상무위원회 위원(〃)

■김성태 노총 사무총장

△KT링커스 노조 위원장

△전국정보통신노련 위원장

△한국노총 부위원장

△중앙노동위원회 노동자위원(현)

△노사정위원회 상무위원회 위원(〃)

■이재웅 민노총 사무총장

△대현 노조 위원장

△서울지역노조협의회 중동부지부 의장

△민주섬유연맹 부위원장

△화학섬유연맹 부위원장

△민주노총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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