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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2월 2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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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노무현(盧武鉉) 정부가 이달 하순 출범한다. 차기 정부의 경제정책이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지에 대한 관심도 높다.
2월 ‘동아경제 포럼’은 새 정부가 추진해야 할 바람직한 경제정책 방향을 집중 진단했다. 지난달 29일 본사 회의실에서 권순활 동아일보 경제부 차장의 사회로 2시간 동안 열린 좌담회에는 김병주(金秉柱) 서강대 교수, 좌승희(左承喜) 한국경제연구원장, 이진순(李鎭淳) 숭실대 교수가 참석했다.》
▽사회=새 정부 출범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중심으로 경제정책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정책방향을 둘러싼 논란도 적지 않습니다. 차기 정부가 경제정책과 관련해 가장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할 부분부터 이야기를 시작할까요.
▽김병주 교수=노무현 정부는 보수보다 혁신, 성장보다 분배에 역점을 둔 정부라는 게 대체적 시각입니다. 지금 우리 경제가 처한 환경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세계 경제는 매우 불안정합니다. 국내적으로도 경제의 3대 축 가운데 근로자는 욕구불만에 가득 차 있고 가계부문은 부채 부담이 큽니다. 기업들은 새 정부 정책으로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차기 정부는 이런 환경 속에서 출범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이들 3자가 경제를 일으켜 세우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좌승희 원장=갈수록 치열해지는 국제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경제문제에 이념적 요소가 많이 개입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경제는 실질 추구의 시각, 즉 이념중립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배불리 먹이고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개혁의 근본 목적입니다. 무엇을 위해 개혁하는지가 잊혀지고 개혁의 형식만 중시되면 안됩니다.
▽이진순 교수=노 당선자의 최우선 정책과제는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입니다. 중국이 급속도로 따라오기 때문에 시간이 없습니다. 새 정부가 이 과제에서 실패하면 역사적인 오명을 남길 것입니다. 동북아 중심국 위상을 확보하지 못하면 한국은 중국이라는 블랙홀에 빨려들 겁니다.
▽사회=지금까지 인수위에서 흘러나온 경제정책은 이른바 ‘재벌개혁’에 초점이 맞춰진 인상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좌 원장=개혁은 일부 계층이나 집단의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경제에 공통된 틀을 고쳐 나가는 것입니다. 기업의 경영이나 회계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매출 2조원 이상인 기업에만 집단소송제를 적용한다든지, 몇 사람에게만 해당될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를 도입하는 것이 주요 개혁과제라면 본질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가령 집단소송제를 꼭 도입해야 한다면 모든 상장기업은 물론 정부도 대상에 포함해야 합니다.
▽김 교수=개혁은 변화인데 변화는 좋은 쪽으로 갈 수도 있고 개악(改惡)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재벌로 불리는 대기업은 공정거래와 소득분배라는 국내적 요인과 함께 대외적으로 해외기업과 경쟁한다는 양면을 갖고 있습니다. 재벌개혁을 한다고 국내 대기업의 경쟁력까지 해치는 결과를 빚어서는 안됩니다. 일부 대기업에서 절세(節稅)가 지나친 면이 있고 이는 견제해야 하지만 자칫 지나치거나 노동계의 기업관이 차기 정부의 기업관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물론 대기업도 개혁을 전면 반대하는 것은 곤란하며 투명성과 사회적 책임을 높이는 구조조정은 계속해야겠죠.
▽이 교수=재벌개혁은 새 정부의 개혁과제 중에서 소소한 부분이고 시급하지도 않습니다. 새 정부의 과제를 재벌개혁에 초점을 맞춘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 분야 개혁에 관한 제도적 장치는 이미 김대중(金大中) 정부에서 대부분 마련됐습니다. ‘선단식 경영’이나 ‘문어발 확장’을 많이 이야기하지만 다른 나라에도 있는 기업형태의 하나입니다. 총수가 3% 정도의 지분으로 전횡을 휘두르는 문제는 정부가 나서기보다 집단소송제 등을 통해 다른 주주 등이 알아서 처리할 일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 본연의 임무는 경제력 집중 억제가 아니라 경쟁촉진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김 교수=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종교적 신념처럼 집착할 사안이 아닙니다. 소유권이 분명한 것이 좋을 수도 있어 케이스별로 다루어야 합니다. 인수위는 집권 초 기업을 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어요.
▽좌 원장=기업 경영전략에 동서고금을 초월한 진리는 없습니다. 정부가 기업들을 한쪽으로 몰고 가서는 안됩니다. 잘하는 기업은 격려하고 못하는 기업은 시장의 메커니즘에 맞게 퇴출시키면 됩니다.
▽사회=차기 정부는 성장보다는 복지와 분배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노동분야에서도 기업보다는 노동계에 가까운 성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분배나 노동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 같습니까.
▽김 교수=성장과 분배는 양자택일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분배를 하려면 우선 파이가 커야 합니다. 올해같이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성장에 포커스를 두어야 합니다. 분배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노동계가 올 봄 춘투(春鬪)를 통해 새 정부의 의지를 테스트할지 모릅니다. 외국자본은 불안한 느낌을 받으면 빠져나갈 겁니다. 반미와 북한핵 문제에 노동시장마저 흔들리면 주가가 폭락합니다.
▽좌 원장=일자리 창출이 분배나 복지의 가장 튼튼한 기초라는 데 동감입니다. 기업이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노 당선자가 노사문제 해결에 적임자라고 생각하지만 노사문제가 당선자의 재량에 맡겨져서는 곤란합니다. 법치(法治)원리가 정착돼야 합니다. 불법파업을 기업이 알아서 처리하라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이 교수=비정규직 불평등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전체 노동자의 12%밖에 안 되는 조직화된 대형사업장의 노동자들은 과잉보상을 받고 있습니다. 조직화된 노동자의 보상을 줄이고 비정규직에게도 4대 보험을 적용해 사용자들이 정규직을 더 많이 뽑게 만들어야 합니다. 재정을 통한 소득재분배는 금액이 얼마 안 되고 ‘복지병(病)’의 위험도 있습니다. 사회민주주의적 복지정책은 외국에서도 실패했습니다. 국내기업의 활동을 장려하고 외국기업을 적극 유치해 일자리를 만드는 게 더 효과적입니다. 완전경쟁시장이 가장 공정한 분배정책입니다. 현재 27%인 법인세를 20% 수준으로 낮출 필요도 있습니다.
▽사회=가계대출이 위험수위에 이르고 재정적자도 커지면서 ‘내채(內債)위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만….
▽김 교수=기존 사업을 다하고 새로 사회복지와 지방재정을 강화하려면 돈을 더 찍거나 국가채무를 늘리는 길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책입니다.
가계부채는 개인이 살림규모를 생각하지 않은 것과 함께 정부가 부추긴 측면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갑자기 대출을 너무 조이면 영세 소상공인들이 큰 압박을 받을 겁니다. 재정적자와 가계부채 해법에도 성장만큼 좋은 약은 없습니다.
▽좌 원장=인수위는 새 정부 임기가 끝날 때까지 재정 증가율을 어느 선에서 묶겠다는 중기재정계획을 마련해야 합니다. 지금 분위기라면 재정악화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을 우려도 있습니다.
▽김 교수=사회주의로 가자고 마음먹지 않아도 ‘예산 제약’을 인식하지 않고 정책을 펴면 결과적으로 사회주의가 됩니다. 동유럽권이 망한 이유도 예산에 대한 고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노 당선자가 예산제약을 인식하지 못하면 비슷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 교수=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 생각이 좀 다릅니다. 빈곤층에 대한 보호를 좀 강화한다고 포퓰리즘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재정상태는 좋은 편이고 시장을 왜곡시키지 않는 사회보장책은 바람직합니다. 다만 사회보장 예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전달체계’를 정비할 필요는 있습니다. 새는 돈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사회=최근 빠른 속도로 소비심리가 얼어붙고 증시에서는 돈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투자 위축 조짐도 보입니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낮아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현재 전반적인 경기를 어떻게 진단하고 계십니까.
▽좌 원장=실물지표는 아직 크게 나쁘지 않지만 최근 몇 주일간 불안요인이 많아졌습니다. 최선의 경기대책은 기업이 투자하게 만드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새 정부의 정책이 균형있고 투명해야 합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근본적인 경기대책입니다. 과감한 규제완화가 필요합니다.
▽김 교수=정부는 다 나쁘고 시장은 다 좋다고 말할 수는 없겠죠. 일부 인수위 멤버의 과격발언에도 나름대로 일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을 먹여 살리는 주력상품인 반도체나 휴대전화는 모두 민간의 창의성이 선택한 품목입니다. 정부 판단대로만 했으면 포철(현 포스코)만 남아있을 겁니다.
▽이 교수=아직 전체 경기상황에는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다만 정부가 가계대출을 줄이는 과정에서 브레이크 밟는 강도가 높아 잘못하면 소비 급랭으로 이어질 우려도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과정을 구축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사회=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지금 한국 경제를 위해 무엇에 신경 쓰고 서둘러야 하는지 새 정부가 판단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석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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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주 교수
△1939년생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위 원
△금융개혁위원회 부위원장
△은행경영평가위원회 위원장
△국민-주택은행 합병추진위원회 위 원장
△한국경제학회 회장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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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승희 원장
△1947년생
△미국 UCLA 경제학 박사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 원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정보통신부 통신위원회 위원
△정부혁신추진위원회 위원
△국제자유도시포럼 공동대표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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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순 교수
△1950년생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장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
△숭실대 교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자문위원
정리=김광현기자 kkh@donga.com
천광암기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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