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박정구 회장 영전에]박관용/그 호방한 인품 그립습니다

  • 입력 2002년 7월 14일 18시 31분


아, 이 무슨 청천하늘에 날벼락 같은 비보(悲報)란 말입니까.

격식에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금도(襟度)를 넘는 법이 없던 그 단정한 인품, 어떤 자리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꾸시던 그 호방한 홍소(哄笑)를 이제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됐다니요.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형님과 아우들은 어떻게 하라고, 당신을 그렇게 사랑했던 우리는 또 어떻게 하라고, 혼자 편한 길이라고 그렇게 휘적휘적 가버리신다는 말입니까.

잘못 들은 말이길, 허망한 뜬소문이길, 지금 이 시간까지 저는 바라고 또 바랍니다.

당신은 제게 참으로 좋고도 귀한 벗이었습니다. 모임을 같이하면서 늘 만나는 데도 만날 때마다 반가운, 흔치 않은 친구였습니다.

당신을 생각하면 호연지기, 자애로움, 결단력, 의리 같은 기분 좋은 단어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정치가 화제에 오른 자리가 있었지요. 의당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을 텐데도 미소로 소이부답(笑而不答)하다 술잔을 권하면서 “국민과 함께 한다는 마음만 잃지 말라”고 한마디하고는 말을 그치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 조용한 한마디가 백마디 충고보다 더 큰 천둥소리로 제 귓가에 쟁쟁하게 남아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여러 가지 일로 정치가 다시 거대한 혼돈의 회오리 속으로 접어드는 시점에 국회의장이라는 막중한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제 자주 만나서 나라가 나가야 할 길, 이 시대 정치인으로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려 했는데 이렇게 먼저 가시다니요. 많은 것이 어수선하고 뒤숭숭한 시절에 마음으로 기대고 힘을 나눌 벗이 안 계시다는 것이 참 아픕니다.

박정구 회장님, 이제 당신을 보냅니다. 당신은 가시더라도 선친인 박인천 창업회장 및 형제들과 힘을 모아 오늘날 금호그룹이라는 대기업군(群)을 일구어낸 일이나 회장직을 형제가 서로 양보했던 그 아름다운 일들은 영원히 우리 가슴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만해 한용운님의 ‘님의 침묵’ 마지막 구절을 나직하게 읊조리면서 영원한 마음의 벗, 박 회장을 떠나보내려 합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박관용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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