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왜 발목만 잡나"…재계 조직적 반발 태세

  • 입력 2001년 4월 23일 18시 23분


정부가 ‘재벌 개혁’을 명분으로 대기업에 대한 각종 조사와 규제를 강화하자 재계가 “시장경제 정신을 존중하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재계는 특히 정부의 대(對) 기업 공세를 주도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잦은 정책 변경과 무리한 법 적용으로 기업경영을 위축시키고 있다며 9월 정기국회에서 공정거래법 개정 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좌승희 원장은 23일 “출자총액제한제와 신문고시의 부활, 30대 그룹의 획일적 지정 등 최근의 정부 정책은 자율과 경쟁을 중시하는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경제가 어려울 때 기업의욕을 꺾는 조치가 계속 나와서는 곤란하다”고 비판했다.

전경련은 5월부터 세미나 등을 통해 공정거래법의 문제점을 부각시킨뒤 국회를 상대로 법개정운동에 나설 계획이다.

▽말 바꾸기로 기업 곤혹〓공정위가 ‘어려운 경제상황을 고려해 당분간 기업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바꿔 상반기 중 8개 그룹의 부당내부거래를 조사하겠다고 밝히자 해당 그룹들은 “일관성 없는 정책 때문에 또 한번 피해를 보게 됐다”고 반발하고 있다.

공기업도 30대 그룹에 지정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히고도 시행이 임박하자 슬그머니 연기한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말 바꾸기라는 지적. 한 4대 그룹 임원은 “민간기업엔 엄격하고 한솥밥을 먹는 공공부문에는 관대한 이중잣대의 대표적인 예”라고 꼬집었다.

공정위가 올 2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도입된 금융거래정보요구권(계좌추적권)을 3년간 추가 연장키로 한 데 대해서도 재계는 ‘약속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일개 행정부처가 영장없이 계좌추적권을 갖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한시 허용된 것을 개혁 명분을 앞세워 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없앤 규제 되살리기〓기업들은 외환위기 이후 폐지된 출자총액제한제가 공정위의 집요한 시도로 부활돼 이 달부터 적용되자 초과분을 서둘러 해소하느라 비상이다.

이 제도는 회사 순자산의 25% 이상을 다른 회사에 출자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것. 정부는 98년 초 이 때문에 구조조정을 어렵게 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폐지했지만 불과 1년 뒤 경제력 집중 억제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부활시켰다.

좌 원장은 “기업들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을 발견해도 출자한도에 묶여 투자에 나서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한번 없앤 규제를 다시 살리는 것은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라는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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