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 일제사면" 발설 금감원실장 평직원 좌천

  • 입력 2001년 2월 16일 18시 31분


분식회계를 한 기업에 대한 일제 사면 조치를 개인 자격으로 기자들에게 밝힌 금융감독원 실장이 전격 보직 변경됐다.

금감원은 16일 내부적으로 추진한 ‘분식회계 일제 사면’방안을 기자들에게 밝혀 일부 신문에 보도되게 한 유재규(柳在圭)공시감독국 회계제도 실장을 증권검사1국 평직원(수석검사역)으로 발령했다. 유실장의 후임에는 회계제도실 최진영 팀장이 승진 발령됐다.

유실장은 15일 “기업의 분식 회계에 대해 일제 사면을 해주지 않으면 곪아터질 때까지 계속 끌고 갈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전향적인 자세로 분식 회계에 대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개인 소신을 밝힌 바 있다.

이번 금감원의 전격적인 인사 조치는 분식 회계에 대한 사면이 과거의 불법 행위 자체를 모두 눈감아주는 초법적인 조치로 현행 법규로는 불가능한 문제가 있음에도 이를 개인 소신으로 피력함으로써 물의를 일으킨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분식 회계 일제 사면’은 대부분 기업들이 내달 주주총회를 맞아 예고되고 있는 ‘회계 대란’에 대한 고육책으로서 금감원 실무자 선에서 검토된 사안.

회계 법인들은 기아 한보 대우 등 기업들의 잇따른 분식 회계로 행정, 사법 조치를 받게 되고 여론의 질타를 받자 엄격한 회계감사를 실시해 해당 기업들과 마찰을 빚고 주주총회가 연기되는 등 회계 대란이 예고돼 왔다.

회계사들은 최근 기업엔 사실상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의견 거절’ ‘부적정’의견 등을 내고 있다. 금감원은 이같은 분위기에 따라 상장기업 중에서도 ‘의견 거절’ ‘부적정’ 등의 의견을 받는 기업이 상당수 나온다면 주식, 채권 시장에서 일대 혼란이 일어날 것으로 우려해왔다.

그러나 분식회계에 대한 일제 사면은 금감원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통치권 차원에서나 결정할 수 있는 문제로 금감원은 15일 저녁 이같은 보도가 나오자 긴급히 해명 기자회견을 갖고 ‘전혀 검토된 바 없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금감원은 분식회계에 대한 행정조치는 할 수 있지만 사법적 처벌을 면해 주는 문제는 법무부와 협의해야 하며 특히 민사소송이 벌어졌을 경우에는 이를 면제해 줄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없다.

유실장은 15일 공식 브리핑에서 개인적 의견임을 빌려 “기업들이 분식을 전기오류수정 방식으로 일정 기간 털면 이에 대한 처벌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기오류수정이란 전년도 회계 처리상 실수 또는 분식 회계 등으로 잘못된 재무제표상의 수치를 손익계산서 수정을 거쳐 대차대조표상의 전기 이월 이익잉여금 규모를 고치는 회계 처리 작업이다.

<이훈기자>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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