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발표 이모저모]금감원 임직원 퇴근 위장 후 심야조율

  • 입력 2000년 11월 3일 18시 34분


9월말 금융감독위원회가 ‘2차 기업 금융구조조정의 일정’을 발표한지 한달여만에 퇴출기업 선정이 끝났다. 당초 10월말까지 끝낼 계획이었지만 은행간 입장이 달라 난항을 겪는 통에 작업이 약간 지연되기도 했다.

○…이번 작업을 총 지휘한 금감원 라인은 정기홍(鄭基鴻) 부원장, 강기원(姜起垣) 부원장보, 이성로(李成魯) 신용감독국장. 이들과 신용감독국 직원들은 2일 밤 정부원장 집무실에서 자정이 넘도록 최종 조율. 심사팀은 취재기자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정부원장 집무실이 있는 금감원 11층 복도 불을 모두 꺼 퇴근한 것으로 위장하기도.

○…지난 3주 동안 140여개 업체에 대해 ‘퇴출 심사’를 마친 외환은행의 담당 심사역은 “의사처럼 몸에 이로운 처방도 아니고…. 죽이겠다는 처방을 내려야하는데 100% 정확한 진단인지 고민됐다”며 퇴출 판정의 심리적 부담감을 털어놓기도.

○…대부분 개별 기업에 대한 평가 결과가 집계된 1일 이후 개별은행엔 관심기업이 퇴출되는지를 묻는 전화가 빗발. 한빛은행의 한 부장은 “업체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그 기업에 물건을 납품해도 되는지까지 물어왔다”고 전언. 끈질지게 회생여부를 물어도 알려줄 수 없다고 거부한 담당자에겐 “그럼 A기업이 딸이냐 아들이냐”고 물었다는 후문도.

○…법정관리 중인 미도파는 이번 퇴출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미 법정관리를 받고 있지만 금감원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도파백화점은 객장에 ‘폐업 대매출’ 등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어 곧 퇴출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왔다. 관련자들이 철저히 ‘모르쇠’로 일관한 것은 금융감독원의 지침에 따라 10월 중순 작성한 각서 때문. 퇴출여부를 결정하는 신용위험평가위원들은 물론 담당심사역들도 ‘절대 평가결과를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제출. ○…당초 은행연합회소속 22개 금융기관은 ‘신용위험평가협의회’를 만들어 이를 통해 은행간 조율을 거치기로 합의했으나 단 한차례의 ‘공식적’ 협의회 개최없이 서면과 전화만으로 결정. 이는 협의회 개최로 해당기업에 대한 정보가 유출될까 우려했기 때문.

○…신용위험평가협의회에 2금융권이 포함되지 않아 일부 부작용도 발생. 퇴출심사대상 기업에 대해 2금융권이 자금을 회수. 현대건설의 1차 부도는 2금융권의 급작스러운 자금회수가 직간접적 원인이었으며 기업에 대한 은행단의 결정을 2금융권이 동의하지 않아 난항을 겪기도.

○…동아건설 퇴출 등 예상을 뛰어넘는 초강경 조치가 내려진데는 동방금고 사태 등 얼어붙은 민심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달 20일 첫 심사결과를 보고했지만 10월말 당국에서 자료를 직접 심사한 뒤 ‘몇곳을 추가하라’고 요청했다”고 귀띔. 결국 이 은행은 당국이 지목한 곳 중 절반 가량을 수용하는 선에서 최종 결정을 내렸다고.

<김승련·이나연기자>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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