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전면수술 필요…"금감원뿐 아니다" 개편 여론

  • 입력 2000년 10월 30일 18시 53분


최근 경제부처가 많이 모여 있는 과천 관가에서는 진념(陳稔) 재정경제부장관과 한나라당 재경위 이한구(李漢久)의원의 ‘설전’이 큰 화제가 됐다.

이의원은 23일 재경부 국정감사에서 진장관이 ‘관치금융’ 가능성이 낮다고 답변하자 “금융기관들이 재경부장관 말은 무시해도 금융감독원 말단직원에게는 꼼짝 못하는 현실을 장관은 아느냐”고 쏘아붙였다.

이의원의 지적에 대해 재경부에서 보인 반응이 흥미롭다.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이의원의 공격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 것”이라며 공감했다. 진장관조차 사석에서 “재경부장관이 ‘경제팀 수장’이라지만 예산권도, 금융권도 없고 입밖에 없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이 에피소드는 현정부 출범 후 이뤄진 경제부처 조직개편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동방금고 불법대출사건을 계기로 금감원 조직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보다 크게 보면 공정성도, 효율성도 없는 것으로 밝혀진 현재 경제부처 조직으로는 전체 국민경제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무력해진 경제정책 총괄조정 기능〓현정부는 98년과 지난해 정부조직개편을 통해 철저히 재경부를 무력화했다. 국제통화기금(IMF)사태에 과거 재경원의 문제가 많다는 것이 이유였다. 예산기능은 기획예산처에, 금융기능은 금감위(실질적으로는 금감원)로 넘어갔다.

문제는 재경부를 ‘경제부처의 핵’이라고 하면서도 경제정책 운용의 두 축인 예산과 금융기능을 모두 떼어 냄으로써 재경부의 정책운용수단이 사실상 무력화된 점. 정부는 현재 재경부장관을 경제부총리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국회에 내놓았지만 예산권이 없는 경제부총리의 역할에는 한계가 많다.

또 경제부총리가 주관하는 경제장관회의에서 경제관련법안을 사전 심의한 뒤 차관회의 및 국무회의에 가도록 한 제도를 없앤 것도 후유증이 많다. 과거에는 논란이 있는 경제정책은 경제장관회의에서 어느 정도 거를 수 있었다. 최근 문제가 된 판교 신도시건설 논란이나 의약분업 강행도 경제부처간 사전조정이 불가능해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재경부 공무원들이 시장의 생생한 현실을 알지 못하게 돼 ‘탁상행정’의 가능성이 커진 점과 각종 경제관련 국책연구기관이 모두 총리실 산하로 가면서 경제정책 수립에 전문지식이 모자랄 가능성이 높아진 점도 문제다.

이 때문에 재경부 공무원들조차 “이런 식으로 운용할 바에야 차라리 과거 경제기획원과 재무부처럼 예산권이 있는 부처에 경제정책기능을 넘겨 경제부총리 부처로 하고 금융 및 국고정책 등은 재무부에 넘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금융정책만 있고 산업정책은 없다〓산업자원부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지면서 금융정책만 있고 산업정책이 사라진 것도 현 정부조직개편의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물론 세계무역기구(WTO)체제 발족 후 정부차원에서 특정산업 육성이 어려워진 측면은 있지만 반도체나 자동차 등 몇몇 산업에만 의존하는 우리 실물경제의 체질을 어떻게 발전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냐에 대한 대안이 없다.

산업자원부에서 에너지정책 기능이 현저히 약화되면서 국제유가급등 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정보통신부 산자부 과학기술처 등이 경쟁적으로 정보통신기술(IT)산업을 맡겠다고 나서면서 부처간 밥그릇 싸움양상이 두드러졌고 스피드가 생명인 IT기업의 발목을 잡는 일도 적지 않았다.

따라서 에너지청을 산자부 외청으로 신설하는 대신 중소기업청을 없애고 산자부가 직접 중소기업정책을 맡도록 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여러 부처로 나뉘어 있는 IT정책을 보다 단순화할 필요도 있다.

▽국회 상임위 이원화의 문제〓같은 금융정책을 담당하는 재경부와 금감위지만 국회 상임위가 다르다. 현재 재경부는 재경위가, 금감위는 정무위가 맡고 있다. 이 때문에 금융정책에 대한 국회차원의 종합적인 감시가 잘 안되고 효율성도 현저히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다.

▽무소불위 ‘공룡조직’이 된 금감원〓현정부는 금융기관에 대한 인허가권과 감독권, 제재권을 모두 금감위에 넘겼고 금감위는 이를 다시 금감원에 위임했다.

문제는 공무원조직도 아닌 금감원이 법령을 제외한 금융정책에 관한 거의 전권을 행사함으로써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된 점이다. 게다가 금감원은 감사원 감사를 제외하고는 거의 외부견제를 받지 않으며 노동조합까지 있다. 행정기관이 아닌 금감원이 인허가권까지 갖는 것은 위법논란도 있을 수 있다.

김만제(金滿堤·한나라당)의원은 토론에서 “과거 신용관리기금에서 하던 신용금고에 대한 감독권을 가져올 필요가 없었던 것 아니냐”며 4개 감독기관의 통합으로 인한 권한집중을 문제삼았다. 김의원은 또 “금감원의 구조조정 결정과 검사(감시)하는 기능을 분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금감원 ‘분리론’을 역설했다. 박병윤(朴炳潤·민주당)의원은 “금감원은 기능상 총리실 산하가 될 수 없는 데도 재경원과 한국은행에 대한 견제라는 미명아래 총리실에 배치됐다”며 “금감원에 대한 적절한 감독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으므로 경제논리에 따라 소속을 재편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권순활>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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