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기업 판정기준 발표/문제점]기업불안 부채질

  • 입력 2000년 10월 5일 18시 47분


5일 발표된 금감원의 퇴출기업 판정기준은 부실 대기업을 퇴출시키는 것보다 회생시키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부실판정 대상이 150∼200개이지만 실제로 퇴출당하는 기업은 20개 안팎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감원 정기홍(鄭基鴻)부원장은 “퇴출기업보다 회생기업이 훨씬 많다”고 밝혔다.

다만 가이드라인이 지나치리만큼 단순해 기업들의 생사가 이렇게 간단한 기준에 따라 엇갈릴 수 있을까 하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물론 은행별로 복잡한 판정기준이 마련될 것이나, 은행의 ‘살생(殺生)’ 기준이 아직 명확하지 않아 기업들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정부는 부실기업을 살리고 죽이는 판단을 은행에 맡겼다. 부실판정이 은행 주도로 진행되는 것이다. 부실판정 대상 기업을 가장 잘 아는 은행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이유로 구체적인 기준은 은행에 맡겨졌다. 그러나 “은행이 부실기업 판정을 제대로 하지 않을 경우 경영자의 책임을 묻겠다”는 정기홍 부원장의 말은 금감원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퇴출기업 어떻게 결정되나〓은행들은 이달말까지 금감원이 제시한 판정대상 기업들 중 퇴출기업을 선정한다. 이때 은행들은 보다 정밀한 잣대를 갖고 평가하게 된다. 예컨대 성장전망이 있는지, 영업능력이 우수한지, 또 최고경영자가 자질이 있는지 등을 면밀히 조사한다. 물론재무구조 현금흐름 등도 종합적으로 평가해 회생, 퇴출기업을 판정한다.

이런 기준에 따라 60대 계열기업의 5∼6개 모기업과 4대 재벌의 일부 계열사도 부실판정 대상에 포함돼 일부는 퇴출당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문제는 이렇게 복잡한 절차를 통해 ‘객관적’으로 퇴출기업이 선정된다고 하더라도 당하는 기업은 억울할 수 있다는 점. “80년대초 부실기업 정리 때 기아자동차가 퇴출대상으로 선정됐다가 우여곡절 끝에 제외됐는데 그 후 봉고신화를 만들며 승승장구했으나 결국 97년에 법정관리에 들어간 것”(금감원 이성로 신용감독국장)은 판정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부실판정 기준 문제없나〓우선 여신 규모가 500억원 이상인 기업만이 퇴출 판정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대출이 500억원에 미달하는 기업도 부실할 경우엔 퇴출판정 대상에 포함되는 게 옳다. 어떤 기업이든 퇴출당해야 할 기업이 살아남아 있을 때 부실은 다시 커지게 되는 탓이다.

기업들은 ‘꺾기(구속성예금·대출금의 일부를 예금하는 것)’가 많다. 갚을 수 있는데도 대출을 받아 이자를 내고 있다는 얘기다. 이자비용이 과다하게 계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자보상배율을 계산할 때 총금융비용에서 이자소득을 뺀 순이자비용을 적용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채권은행이 많을 때 은행간 기준이 달라 경합을 벌일 경우를 대비해 전문가로 독립적인 ‘부실기업 판정위원회’가 필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일부 은행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도 문제다. 공적자금 투입을 기다리느라 그동안 워크아웃기업 등 부실기업 처리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묻느냐도 과제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을 청산(매각)시키지 않고 법정관리에 편입시키는 것은 또 다른 잠재부실을 만든다는 점에서 퇴출의 정의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홍찬선기자>hcs@donga.com

▼이자보상배율-FLC의 요주의이하 등급▼

정부가 2단계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채권은행들에 제시한 부실기업 판정 가이드라인에는 이자보상배율과 신자산건전성분류(FLC·Forward Looking Criteria)기준 등 다소 생소한 용어들이 자주 나온다. 의미를 알아본다.

◇이자보상배율〓기업이 빌린 돈의 이자를 통상적인 경영활동에서 나오는 영업이익으로 충당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예컨대 A기업이 1년간 지불해야 하는 지급이자가 2억원인 경우를 보자. A사는 영업이익이 최소한 2억원은 생겨야 ‘새로 빚지지 않고’ 이자를 갚을 수 있다. 이때 이자보상배율은 1이다. 영업이익이 1억원밖에 없다면 배율은 0.5로 떨어진다. 결국 이자보상배율이 1보다 작다면(금융비용이 영업이익보다 크다면) 이 기업은 영업활동에 따른 이익으로 원금은커녕 이자조차 갚을 수 없는 상태에 있다는 뜻이 된다. 물론 이자보상배율이 1을 조금밖에 넘지 않는다면 이자는 갚을 수 있지만 원금갚기에 허덕일 수 밖에 없다.

◇FLC의 요주의이하 등급〓지난해까지는 기업이 빚을 내서라도 은행에 이자만 제때 갚으면 ‘정상 여신’으로 판단됐다. 그러나 돈꿔서 빚갚는 기업이 정상일 수는 없다. 그래서 올해초 실제로 돈갚을 능력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는 신자산건전성 분류(Forward Looking Criteria)기준이 도입됐다. FLC기준에 따라 모든 대출은 기업의 정상(대손충당비율 0.5%이상) 요주의(2%) 고정(20%) 회수의문(50%) 추정손실(100%)로 분류된다. 기업이 △빚을 내서 이자를 갚거나 △1개월 이상, 3개월 미만 이자가 연체된 경우라면 요주의등급이 매겨진다. 요주의이하 등급이란 FLC상 요주의∼추정손실까지 빚을 내 이자를 갚거나 1개월이라도 연체된 모든 대출을 의미한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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