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관심끄는 롯데그룹 '무차입 경영'

  • 입력 2000년 8월 2일 18시 28분


‘연결재무제표상 부채비율 76.3%, 결합재무제표상 부채비율도 86.8%.’

2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16대 그룹 재무제표상의 부채비율 중 가장 낮은 롯데그룹의 ‘부채성적표’이다. 재계에서는 이 같은 부채비율은 롯데그룹이 그동안 ‘돌다리도 남이 건너지 않으면 건너지 않는다는 보수적인 경영’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 별로 놀랄 게 없다는 반응이다. 선단식의 경영과정에서 과다한 부채로 몸살을 앓고 있는 대기업집단(재벌)이 많은 현실에서 롯데의 ‘실속 경영’은 이번 결합재무제표 발표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보다 공격적인 경영이 필요할 때 너무 움츠러들어 사세 확장에는 불리한 것이 아닌가 하는 반론 등 ‘부채 성적표’에 대한 다른 해석도 나오고 있다.

▽신격호(辛格浩)회장의 ‘무차입 경영’〓부채비율이 100% 이하라는 것은 자본금 5000억원인 롯데가 자본금만큼도 빚을 얻어 쓰지 않았다는 것. 보다 구체적으로는 28개 계열사 중 13개 기업이 은행 등 금융기관에 저축한 액수보다 차입금이 적다.

롯데는 또 재무 수익성의 주요 지표인 ‘이자보상비율’도 3.81로 16개 그룹 중 가장 높았다. 반면 이자보상비율이 1을 넘어 이자비용이 영업이익을 초과해 영업활동으로 금융기관 이자도 지급하지 못하는 그룹도 9개나 됐다.

롯데의 이 같은 무차입 경영방식은 신회장의 지론으로도 잘 나타난다.

“잘 모르는 사업을 확장 위주로 경영하면 결국 국민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고객이든 협력업체든 롯데와 거래하면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아야 한다.”

‘신격호 경영학’으로도 불리는 자신 있는 업종을 선택해 이를 전문화 집중화해 일단 사업이 시작되면 동종 업계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다른 분야를 넘보지 않는 경영철학도 ‘빚 없는’경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타재벌과는 다른 롯데의 이 같은 경영은 특히 97년 우리경제가 ‘IMF 파고’를 맞았을 때에는 ‘위기 타개의 1번 타자’로 불리며 ‘IMF 파고의 무풍지대’를 구가했다. 구조조정을 위해 인원정리 등의 대가도 치르지 않았다.

▽그러나 고민도 많다〓재무상태가 건전하다고 하지만 롯데도 고민이 적지 않다. 이번 재무제표 발표에서 여러 가지 지표 중 매출액대비 해외영업이익률에서는 롯데가 ―12.7%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해외 사업에서는 적자를 보고 있다는 얘기다.

호텔의 장기 파업도 큰 상처를 남기고 있다. 홀짝수 달을 번갈아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신회장이 6월초 일본에 간 뒤 7월에는 입국하지 않았다. 홀수 달에는 한국에 머물러왔으나 6월 9일 시작된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파업이 타결되지 않으면서 입국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는 IMF 과정에서 직원을 해고하지는 않았지만 상당수 인원을 정규직에서 임시 계약직으로 전환했으며 노조의 경영권 참여 등의 일부 항목에 대해 갈등을 빚고 있다. 파업 등을 거치면서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애정도 많이 식었다.

롯데의 부채비율에 대해서도 안팎에서 ‘액면’과 다른 해석이 나온다.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80년대 이후 각 그룹이 ‘빚을 얻어서라도’ 과감하게 공격적인 경영을 펼칠 때 너무 안정적인 사업에만 안주해 사세를 확장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갖고 있다.

한 금융계 전문가는 “롯데의 ‘현금 장사 위주의 보수경영’이 21세기에도 경쟁력을 발휘할지 관심”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등 정부에서도 부채 비율 200%를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고 있다.

<구자룡기자>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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