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졌습니다요,형님"현대 계열분리 백기 … 정부선 "아직 못믿어"

  • 입력 2000년 8월 1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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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을 제출하겠다”(현대).

“해법은?”(정부).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무조건 정답을 내겠다”(현대).

자동차 부분 계열분리를 둘러싸고 정부에 맞서던 현대그룹에서 보기드문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현대그룹 고위 관계자들은 지난달 31일부터 기자들을 만나면 “제발 현대그룹이 백기를 들었다고 써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정부가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면서까지 이래라 저래라 간섭한다’며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던 현대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고 갑자기 순한 양으로 바뀌 것.

현대의 이런 분위기는 계열분리의 관건인 정주영(鄭周永)전 명예회장의 자동차 지분 9.1%를 3%이하로 낮추라는 정부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현대는 정작 관심사인 ‘어떻게 정 전 명예회장의 지분을 낮출 것인지’ 그 해법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항복’ 시기와 방법은 아직 확정되지 않고 항복한다는 원칙만 미리 정해진 셈.

공정거래위원회측은 “아직까지 현대측에서 계열분리 방안을 상의해오거나 기존의 입장을 변화시키는 메시지를 직접 전달받은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재계에서는 현대측의 입장변화에 대해 정부의 계속되는 전방위 압박에 현대가 “더 이상 도저히 버티기가 힘들다”고 판단하고 우선 항복을 선언, 시장의 현대에 대한 불신을 잠재운뒤 가장 유리한 항복조건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고있다.

이런 분위기는 그만큼 현대가 벼랑 끝에 밀려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특히 현대전자의 외자도입과 관련 금감원이 현대중공업 현대증권 현대전자 등 3개사가 외환관리법을 위반했는지 조사를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혔고 그 칼날이 그룹의 ‘핵심가신’인 이익치(李益治) 현대증권회장에게도 갈 수 있음을 명확히 하고있어 현대로서는 사면초가의 상태에 처해있다.

현재 거론되는 정 전 명예회장의 주식처분 방법은 △지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채권단에 맡기는 안△ 사회지도급 인사중 도덕성을 갖춘 인사에게 넘기는 안 △아산재단에 넘기는 안 등이다.

현대의 한 관계자는 “주식을 완전히 처분하는 형태는 아닐 것”이라고 암시했다. 주식을 채권단에 맡기고 의결권을 제한한뒤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방법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는 것.

현대측은 계열분리 신청이 늦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정 전 명예회장의 주식과 관련된 사안은 오너 패밀리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물려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내부재가를 받는데 시일이 걸린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정부 일각에서는 현대의 이런 입장변화에 대해 일단 환영의사를 표시하면서도 “우선 개각때까지 시간을 벌어놓고 새경제팀과 또다시 줄다리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느냐”며 의구심을 표시하는 인사들도 있다. 과거 경험으로 볼 때 실제로 ‘항복선언’이 나오기전까지는 현대를 완전히 믿을수 없다는 시각이 정부내에는 적지 않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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