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예산처 배국환과장,"예산은 뻔하고 달라는 곳은 많고…"

  • 입력 2000년 7월 24일 19시 00분


재원은 한정됐는데 손벌리는 곳은 많고…. 예산업무를 맡은지 14년째지만 이번처럼 예산짜기가 힘든 적은 없었습니다.

기획예산처 배국환(裵國煥)건설교통예산과장은 내년 예산안 준비상황을 묻는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한숨부터 내쉬었다.

바야흐로 예산편성의 계절. 여름 휴가철을 맞아 도심이 한산해졌지만 서울 강남구 반포동 기획예산처 청사는 중앙과 지방의 공무원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때아닌 주차난이 한창이다. 사무실 곳곳에서는 신청한 예산을 한푼이라도 더 따내려는 각 부처 실무자와 삭감할 명분 찾기에 골몰하는 예산담당자 사이에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52개 중앙부처가 내년 요구한 예산(일반회계 기준)은 114조3000여억원. 올해 예산 92조6000여억원보다 32% 증가했다. 반면 내년 예산증가율은 6%로 억제돼 100조원을 넘지 못하는 실정. 그나마 저소득층 생계비와 지방교부금 등 법 개정에 따라 필수적으로 늘어나야할 예산이 13조∼14조원이나 돼 다른 예산은 작년보다 오히려 6조원 정도를 줄여야할 형편이다.

배과장은 정부 부채를 줄여 재정건전성을 회복하려면 허리띠를 졸라매는 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 면서 부처요구액 중 20% 가량은 삭감해야할 처지 라고 설명했다.

배과장이 예산을 배정하는 분야는 도로 항만 공항 철도 수자원 주택 물류 등 사회기반시설(SOC). 예산편성 여건이 빡빡해지면 덩치는 크지만 사업효과는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는 SOC가 자연스레 삭감 1순위로 지목된다. 대폭 삭감 의 악역은 배과장의 몫이 됐다.

그가 세운 3대 원칙은 △신규사업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연기 △계속사업은 기간 연장으로 배정액 삭감 △청사신축이나 행사경비 등은 전면 불허 또는 대폭 삭감.

하지만 SOC 예산은 건설경기 향배와 밀접한데다 지방자치단체들과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어 원칙을 고수하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읍소 회유 압력 등 각종 인연을 총동원한 로비에 시달리다 자정이 넘어 퇴근할 무렵이면 온몸의 기운이 쭉 빠져나가는 느낌마저 든다. 같은 공무원 신분이지만 상대방은 엄연히 민원인 인 만큼 식사 요청은 가급적 정중히 사양한다.

요즘은 국회의원들도 훨씬 적극적이다. 장차관이나 국실장은 물론 담당과장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 지역구 예산이 배정돼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배려를 당부한다.

현재 예산안 편성작업은 각 부처가 요구한 사업을 실무선에서 점검하는 1차심의가 끝나고 삭감내역에 이의를 제기한 사업에 대해 재검토하는 2차심의에 들어간 상태. 이제부터 본게임인 셈입니다. 예산담당자는 예산을 깎은 이유를, 각 부처는 예산이 필요한 근거를 내세워 논리 대결을 벌여야 합니다. 예산권을 쥐고 있다지만 논리대결에서 밀리면 설득이 어렵기 때문에 바짝 긴장하고 있습니다.

배과장은 예산담당자들의 마음은 가정살림을 꾸리는 주부의 심정과 비슷할 것 이라며 대규모 국책사업의 경우 한번 예산을 잘못 편성하면 그 폐해가 오래 이어지기 때문에 더욱 신경을 쓴다 고 말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내년 예산안 편성 일정

△각 부처 예산요구액 신청5월말
△1차 심의결과 확정(대폭 삭감)7월20일 전후
△이의제기 사업에 대한 2차 심의7월말까지
△장관협의회(장관선에서 최종 절충)8월 초순
△기획예산처 안 확정8월10일 전후
△당정협의8월말∼9월 초순
△차관회의 및 국무회의 통과9월중순∼9월말
△국회 제출10월2일
△국회 본회의 의결12월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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