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태 증권사 시각]"사재출연이 최선의 해법"

  • 입력 2000년 5월 29일 19시 27분


‘공룡이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현대그룹 문제를 바라보는 증권가 시각이다.

지금까지는 아무리 돈을 잘 벌어왔다고 하더라도 향후 현금창출 능력을 의심받는 기업은 가차없이 버림을 받는 것이 자금시장의 현실인데 현대가 무모한 버티기로 나오면서 자칫 화를 자초하려 한다는 비판.

▼채권단과 신뢰관계 금가▼

증권가 일각에서는 현대그룹 차원에서 단기적으로 현대건설을 살려나가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한 증권사에 따르면 현대그룹의 이자감당률(이자비용÷경상이익×100)은 98년 0.1%에서 작년 150%로 크게 늘었고 올해는 270%로 추정된다.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를 갚아나가며 연명할 수 있는 수준은 충분히 된다는 얘기. 여기엔 ‘부채 만기와 수익 발생시점의 불일치 문제가 롤오버(만기연장) 방식으로 해결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런데 지금 현대와 채권자간에 이런 기본적인 신뢰관계가 무너져가고 있다는 게 증권가 해석이다.

▼계열사 고통분담 회의적▼

‘현대건설을 현대 계열사들이 힘을 합쳐 살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각도에서 현대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주장도 많다. 이런 해법은 재벌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 및 상호출자 해소라는 재벌개혁의 기본방향을 거스르고 있다는 지적. 이런식의 계열사간 고통분담 해법은 현대건설의 부실을 그나마 멀쩡한 다른 계열사로 확산시킬 위험성이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한 건설업종 애널리스트는 “자산의 절반 가량이 부실화했다고 가정할 경우 현대건설에 대한 금융권 손실은 2조원 이상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현실적으로 현대투신과 현대생명의 자본잠식 규모가 각각 1조2178억원, 2196억원인 상황에서 2조원이 넘는 현대건설 부채를 계열사들이 출혈없이 분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 증권사 임원은 “부채가 많고 경기의 영향을 크게 받는 일부 계열사들의 경우 현대건설을 지원하느라고 기진맥진해진 상태에서 한파를 맞으면 생존의 위기에 몰릴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증권가에서는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동반부실을 막고 국민의 혈세를 또다시 허비하지 않으려면 정씨 일가가 부동산이나 계열사 주식을 처분한 돈으로 현대건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보고 있다.

<이철용기자>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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