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경쟁룰도 시대 따라야"…공정위원들 "개선"목소리

  • 입력 2000년 5월 2일 19시 19분


“솔로몬의 지혜가 아쉬웠다.”

지난주 조건부 승인으로 결론을 내린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 인수 건 심사를 마친 공정거래위원회 위원들은 큰 ‘짐’을 벗어버린 듯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개운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한 상임위원은 “마치 공정위의 실력을 테스트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려운 사안이었다”면서 “과연 최선의 답안을 내놓았는지 자문해 본다”고 토로했다.

수많은 기업결합 사건들을 다뤄본 ‘베테랑’들이지만 이번에 받아든 문제는 그만큼 위원들을 괴롭힌 난제중의 난제였다.

한 위원은 “공정위에 접수되는 사건들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양상을 띠고 있다”면서 “그만큼 산업 지형이 급속히 달라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신세기 통신 결합건은 그래서 공정거래 정책에 새로운 기준, 새로운 역할 모색의 필요성을 제기했다는 것이 주변에서 나오고 있는 얘기다.

▽공정경쟁 정책의 방향타〓SK텔레콤-신세기통신 결합건은 두가지 큰 틀을 제시하고 있다는 면에서 향후 공정경쟁정책의 방향타로 받아들여진다. 첫째는 ‘글로벌 경쟁체제’하에서의 공정거래정책의 변화 필요성이다.

80년 공정거래법이 제정된 이래 공정위가 다뤄온 사건들은 국내 기업환경만 고려하면 됐었다. 그러나 IMF체제 이후 세계경제에 ‘리얼타임’으로 편입되면서 이제 국내시장에서의 독점논란은 별 의미가 없다.

“글로벌 경쟁과 국내에서의 경쟁정책과의 조화가 필요하다. 새로운 경제현상이 전개되면서 한편으로는 과거의 경쟁정책이 가졌던 유효성이 상실되고 있다”(현대경제연구원 박용주연구위원). 박위원은 “새로운 경제현상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경쟁정책의 대상이나 내용이 변화돼야 한다”면서 “한 국가안에서 경제력 집중이 갖는 의미는 퇴색했다”고 말한다.

▽복잡해진 시장 변화 따라 잡아야〓또 한가지는 통신시장처럼 그야말로 ‘광속도(光速度)’로 급변하는 기업환경 변화에 어떻게 순발력있게 대처하느냐는 것이다.

SK텔레콤-신세기통신 건을 심사하면서 위원들은 서류를 싸들고 집으로 가 씨름을 해야 했다. 그러나 복잡한 이동통신업계 사정이나 전문적인 용어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많은 애를 먹었다. 위원들은 최소한의 판단자료로 독점 폐해와 효율성 증대를 계량화한 수치를 요구했으나 이것도 쉽지 않았다.

연세대 정갑영교수(경제학)는 “갈수록 공정거래 사건들이 복잡해지는 추세에 대응해 심사방식도 바꿔져야 한다”고 지적했다.“미국처럼 공개적인 공청회 등을 통해 활발히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상임 비상임 위원으로 이뤄진 9인회의가 절대적인 권한을 갖는 폐쇄적인 체제는 복잡다기한 사건들을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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