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환어음을 전액 매입해달라는 정부 요청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이 꿈쩍도 않고 있다. 31일 일선 은행 창구에서는 “본점 지시가 없다”며 수출환어음 매입을 재개하지 않아 수출업체 자금난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중단되다시피한 수입신용장 개설도 하루빨리 재개되지 않으면 이달 말경에는 수출용 원자재 구득난까지 겹쳐 급격한 수출감소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수출환어음 매입상황〓D상사 관계자는 31일 “30일 정부대책이 발표된후 거래은행들에 일일이 수출환어음 매입의사를 문의했으나 한결같이 ‘본점 지시를 받지 못했다’며 거절했다”고 말했다.
S상사 관계자도 “30일 오후 거래은행이 수출환어음 적체현황을 알려달라고 해 잔뜩 기대를 걸었으나 아직 소식이 없다”며 “수출기업들은 돈이 말라 하루를 넘기기 힘든데 은행들이 늑장을 부리고 있다”며 발을 굴렀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신년 초에나 가능한 환어음 매입 방침을 앞당겨 발표하는 바람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은행 입장〓H은행 관계자는 “유력 무역업체들을 대상으로 수출환어음 매입한도를 늘리고 있으나 은행 역시 하루하루 달러 확보에 사활을 거는 형편이라 매입한도를 크게 늘리기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다른 은행 관계자는 “한국은행이 시중은행에 외화자금을 충분히 지원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출 원부자재난 심화〓한편 수출금융 마비와 함께 수입신용장 개설거부 사태가 계속되면서 수출용 원부자재를 구하는 것도 한층 어려워질 전망이다. 원부자재난은 곧바로 수출계약 불이행 사태를 불러 급격한 수출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무협이 30일 15개 업종 32개 수출입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기업들이 개설해달라고 요청한 수입신용장 중에서 은행은 고작 19%(액수 기준)만 허용했다.
기업들은 현금을 외국업체에 직접 보내거나 국산 원부자재 비율을 늘리는 등의 대책을 세우고 있으나 생산차질을 피하기 어렵다고 절박하게 호소하고 있다.
〈이강운·박래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