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의 동향이 수상하다. 한국 증시에 투자한 수천억원 상당의 보유주식을 슬그머니 팔아치우기 시작한다. 이미 황소개구리로 성장, 국내 증시를 한손에 쥐고 흔들만큼 성장한 외국인들이 막무가내로 매도 주문을 내자 증시는 공황 상태에 빠진다」.
국제 투기성 자금(헤지펀드)이 한국의 원화를 공략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경제위기 현상을 가상한 것이다. 공포의 상황은 이렇게 이어진다.
「주식 대금은 곧장 외환시장에서 달러화로 바꾸어진다. 달러가 초강세를 보이고 원화 가치는 폭락한다. 원화 폭락(환율 급등)으로 환차손을 입게된 기업들은 그나마 손해를 줄이기 위해 달러 선물환 주문을 내보지만 달러를 팔려는 곳은 한 군데도 없다. 원화 투매(投賣)현상이 벌어져 원화 가치는 자고 나면 10원씩 떨어진다. 국내외 선물환 거래를 통해 짭짤한 시세차익을 본 국제 투기성 자금은 본격적인 원화 공략에 나선다. 외환당국은 보유 달러를 풀어 원화 지지에 나서지만 달러 사재기 열풍에 휘말려 외환보유고만 바닥이 나버린다. 환차손에 놀란 외국 기업들은 한국에서의 영업을 포기하고 하나 둘씩 본국으로 철수한다. 외환위기에 경제가 멍든 한국은 국제적으로 투자위험국으로 낙인찍힌다」.
이같은 가상 시나리오와 관련, 외환전문가들은 그러나 『멕시코 태국 등에서 벌어진 외환위기가 한국에서 재현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며 외환위기설을 일축한다. 태국 등 동남아국가의 통화폭락은 △수출신장률의 둔화 △경상수지 적자폭 증가 △국내총생산(GDP)의 현저한 위축 등 빈약한 경제체질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기초 경제여건이 튼튼한데다 외국 자본의 유출입에 제약이 많아 원화가 투기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한국은행의 설명이다. 재정경제원도 3일 경상수지, 환율동향, 금융시장 개방정도, 외채상환능력 등을 종합해볼 때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가능성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이날 『한국 경제가 경상수지 적자확대와 기업의 연쇄부도로 골병 들고 무리한 시장개입으로 원화 가치를 실제보다 과대포장하면 외국인이 본격적으로 철수하고 원화도 투기성 자금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강운기자〉